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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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한참 두꺼운 책을 손에 들었던지라,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집어 왔다. 이럴 때 자주 찾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다행이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꽤 많아서 당분간은 계속 이용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스키점프라는 소재를 중심에 둔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스키점프계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재 선수 니레이. 니레이의 팀이 포함된 연합 동계훈련지에서 니레이가 중독되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럼 범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니레이의 코치인 미네기시가 일을 저지른 사람인 것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이제 경찰들이 어떻게 범인을 향해 수사를 해 나갈 것인가와 왜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를 설명하는 두 개의 축으로 이어진다. 도치 추리소설의 유형이다.





사실 스키점프가 우리나라에서 그리 인기종목도 아닌데다, 가끔 동계 국제스포츠대회가 열릴 때에야 볼 수 있는 수준인지라 좀 생소하긴 했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도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하는 게 재미있는 부분. 작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에서 몇 번 취재 차 스키장에 다녀왔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 때 구성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지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작가로서는 한 가지 흥미꺼리를 포기한 채 이야기를 만드는 셈이다. 아무래도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이런저런 추리를 해 가면서 이야기를 읽는 게 추리소설의 재미이기도 하니까. 도치 구조는 그만큼 전형성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또 다른 것으로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자신감(혹은 필력)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사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상황으로 어느 정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작가니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는 것도 독자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이야기도 나름 읽어가는 동안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과연 어떻게 경찰들이 진범을 잡을 수 있을까 하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의 키는 범인이 만든 트릭과 범행 동기에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 물론 트릭이라는 게 알고 난 후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범행의 동기 쪽이 좀 아쉽다. ‘이게 동기가 돼?’ 싶지만 뭐 실제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게 현실이니.





책 제목에 들어있는 “조인”은 새처럼 날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스키점프 선수를 가리키는데, 보통의 선수들과 달리 훨씬 좋은 기록을 내는 니레이를 가리킨다. 소설 속에는 그런 니레이와 같은 선수를 “만들어”(“길러”가 아니라) 내기 위한 특별한 계획이 등장하고, 이것이 범인인 미네기시를 자극해 일을 저지르도록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하면 과도한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특별한 종류의 과학적 도구가 사용된다는 점만 말해본다. 사실 갈수록 스포츠에 과학이 접목되는 일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는데, 근본적인 의문이 좀 든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육체적 탁월함을 보여주는 선수들의 플레이 때문일 텐데, 만약 그게 과학적인 도움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냥 컴퓨터 속 시뮬레이션 게임과 뭐가 다른 걸까. 뭐 스포츠에 대한 열광에는 다분히 감성적인 무엇이 더 크겠지만.


큰 고민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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