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부터 시작되는 책의 두 번째 파트에서 저자는 장애라는 주제에 대한 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장애 표현들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피는 5장은 흥미롭다. 하나님은 장애인들이 전혀 불편함이 없이 함께 어울리는 나라를 기대하셨다.
그리고 약간의 불편했던 6장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장애를 부정적인 은유로 사용하는 언어습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사실 여기에는 영어 표현의 특성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데, 장애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들(deaf, crippling, blinding, paralyzing, lame 같은)은 2차적인 의미로 뭔가 모자란 존재들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 본인들에게는 그 단어가 2차적인 문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장애에 대한 비하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이걸 그저 민감하다고 무시해도 될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을 빗댄 비하표현들이 결코 적지 않으니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성경에 나오는 표현들까지도 그러니까 바꿔달라는 저자의 요청이 어느 정도까지 수용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결국 이 부분은 성경의 재번역 문제, 그리고 여기에 개입될 특정한 신학적 지향(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이 부분에 관해 몇 개 장을 할애한다)의 선택 같은 좀 더 복잡한 문제와도 결부될 테니까.
하지만 교회 안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을 좀 바꾸는 정도는 좀 더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경우들은 단지 우리가 그동안 해 왔던 것을 바꾸라는 요구에 대한 불쾌함 수준 그 이상이 아니니 말이다. 십자가 앞에서 단지 우리의 고집도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는 과연 무엇을 믿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