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이 무엇이냐 - 사탄, 그 존재에 관하여
전원희 지음 / 이레서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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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탄’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듣게 된다.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좀 더 자주 듣거나, 가끔 듣거나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소위 순복음 계열의 교회들에선 우리의 일상의 세세한 부분에도 사탄이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고, 반대로 현대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계열이라면 성경 본문에 나오는 사탄이라는 용어를 상징적으로 읽으려고 애쓸 것이다.


사실 성경 본문에서 사탄의 존재는 생각만큼 선명하지 않다. 그 기원에 관한 설명으로 자주 사용되는 에스겔서의 문학성 짙은 구절들처럼(의외로 이 책에서 그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 본문들은 사탄의 정체에 대해서는 별 단서를 주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그 언급도 그다지 잦은 편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부터가 왠지 곤란해진다. 아는 게 부족하니 그 부족한 자리를 다양한 상상력이 채우곤 한다. 사탄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한 온갖 소설들이 난무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 책은 신구약 성경 본문과 중간기 문헌 속 사탄에 대한 언급들을 뽑아 종합해 놓은 작업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탄에 관한 초기 언급인 스가랴서에서 사탄은 제한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하나님은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못살게 구는 것을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다.


하지만 욥기에 이르면 사탄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문제에 개입한다. 물론 이 때도 하나님의 제한 아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경향은 역대기에 이르면 좀 더 강해져서 사탄은 거의 독립적으로 다윗을 충동해 인구조사를 하게 만드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 안에서 사탄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독립성을 갖는 존재로 발전되어 왔다는 주장이다.


교회에서도 구약의 이런 이미지는 대체로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사탄은 하나님의 제한을 받는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로 묘사된다. 때로 사탄은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 그리고 성도를 악으로 꾀어내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제압되고 만다.





언젠가 말했듯이 내 기준에 좋은 책은 어떤 내용을 아주 잘 정리해 놓거나, 생각지 못했던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전자 쪽에 속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면도 몇 가지 보이는데, 우선 저자가 구약 성경 속 사탄 개념의 발전으로 언급한 구절이 겨우 세 구절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세 구절로 정말 구약 시대 유대인들의 사탄에 대한 관점이 발전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간기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사탄과 그것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들을 정리, 소개한 부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다만 그런 나열식 소개가 책의 전반적인 논지를 강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약간 회의적이다.


사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에서는 사탄 개념의 이해를 시간적 순서대로 설명하는 부분이고, 2부는 갑자기 축귀사역, 즉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실제로 경험하긴 했으나, 자선을 베풀고 섬기는 것으로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았을 것이라면서, 오늘날에도 그들을 따라 제대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짓는다.


내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게 아니라면, 여기엔 제대로 된 논리적 긴밀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저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얼기설기 늘어놓다가 급히 결론을 지은 느낌이랄까. 저자가 결론부에서 주장하는 삶의 중요성을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그저 이 책 전체의 결론으로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었던 작업물이었다. 물론 결론의 어색함을 빼더라도 참고자료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원전 속 기록들을 정리해 둔 부분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현대 저자들(가끔 이 사람이 이 분야의 전문가 맞나 갸우뚱 한 경우가 보인다)의 해석을 늘어놓은 부분보다 좀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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