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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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지만 오히려 영국을 비롯한 서양에서 좀 더 유명한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신작이다. 제목이 독특한데, 경제학 하면 온갖 통계와 그래프, 수치들이 잔뜩 등장해 보기만 해도 어렵게 느껴지는 영역이라는 선입관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좀 더 편안하게 설명하기 위한 방법이다.


저자는 각각의 장을 하나의 식재료 소개로 시작한다. 머리말에서는 ‘마늘’을, 그 외에 멸치, 소고기, 바나나, 고추, 딸기 같은 익숙한 재료부터 오크라, 호밀, 향신료와 라임 등 조금은 이색적인 재료들까지 등장한다. 각 재료들과 관련된 자신의 요리법이나 추억, 그리고 역사가 간략하게 언급된 뒤, 그와 관련된 경제학 원리를 소개하는 식. 덕분에 전체 이야기가 좀 부드러워진 느낌이랄까.




책의 내용은 저자의 앞선 저작들과 유사하게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 내지는 보완적 주장을 담고 있다. 자유 시장과 경쟁이 경제 번영을 이끈다는 신화가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물론 앞서도 언급했듯 이 내용이 너무 어려워지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입만 열면 ‘자유’, ‘시장’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라는 건 매우 좁은 개념으로 “기업이 가장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자유, 노동자가 직업을 고를 수 있는 자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자유 등에 한정”(74)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자유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여긴 나머지, 그런 자유만 보장해 준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독재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보다 경제적 번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심지어 그렇게 해서 정말 경제가 발전되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확신범들이다.


그들은 역사 왜곡도 마다치 않는다. 세계의 경제 발전이 자유시장경제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은 역사적으로 경제발전을 크게 이룬 나라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통해(170), 그리고 많은 경우 제국주의 정책으로 식민지를 착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발전을 이뤘다(66).


나아가 기본적으로 돈이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원칙과 모순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민영화 논리다. 저자는 이 논리를 ‘1인 1표’라는 민주 사회의 원칙을 축소하고 ‘1원 1표’라는 시장논리를 확장하다는 주장이라고 말한다(35).


저자는 경제발전에는 산업화, 그 중에서도 탄탄한 제조업 분야가 필수적이라고 여긴다(107). 그런데 이 일을 위해서는 단순히 “자유 무역”과 “시장”, “경쟁”만 주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 동안 정책적인 육성과 보호가 필요하다(118). 또, 국가의 적절한 경제정책의 영향은 다른 요인에 비해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59).




전반적으로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영역에서도 합리성과 사실에 대한 적절한 분석 보다는 일종의 신앙과 비슷한 로직이 작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유로운 시장을 위해 독재자를 지지하거나, 경제정책이 자신과 다르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는 식의 만행을 저지르는 소위 ‘자유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 꼭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다만 우리나라의 현 정부가 과연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능력을 갖고 있는지 미심쩍다. 1년 넘게 정권을 잡고 국가경제를 운영해 오고 있지만, 고작 해 놓은 일이라고는 대기업의 법인세를 줄이고, 국가의 재정지출을 규모를 축소하는 식의 고전적 시장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을 뿐이니까.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경제학적 분석은 신화(잘못된 믿음) 또는 기술적으로는 맞지만 왜곡된 방법으로 취합된 ‘사실’ 또는 의문의 여지가 있거나 노골적으로 옳지 않는데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질 낮은 ‘재료’를 사용한 분석이라면 그 결과 나오는 경제학 ‘요리’는 잘해야 영양가 없는 음식이고, 잘못하면 몸에 해로운 음식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옳은 지적이다. 상한 재료를 가지고 좋은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에 실력 자체도 서툰 요리사가 재료를 다룬다면 음식을 망칠 가능성이 더 높아질 테고. 우리 경제는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아주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다. 경제 전반에 관한 기초 상식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만 저자가 애써 소개하고 있는 식재료와 그 장에서 설명하는 경제이론이 늘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좀 무리하게 이어붙인 듯한 느낌이랄까. 뭐 이 정도야 그냥 이야기의 재미있는 도입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도 그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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