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가 모든 걸 덮은.


보통 여간해서 이런 식의 일본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는 바로 이 단어가 떠올랐다. “가오”. 사실 일본어 의미를 직역하면 “얼굴”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이 단어가 뭔가 폼을 잡는, 허세가 잔뜩 들어간, 하지만 자신은 그걸 모르고 굉장히 진지하게 뽐내는, 뭐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딱 그랬다.


영화 초반부터 일본을 배경으로 하더니, 야쿠자 비슷한 무리가 등장해서 장검을 휘두르거나, 심지어 활을 쏜다. 21세기에, 그것도 총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적에게 칼과 활이라니... 심지어 여기 등장하는 활은 일본 전통식 활도 아니다. 사람 키만큼 크게 만들어야 겨우 반발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뭐 이건 좀 발전했다 이건가. 그러려면 차라리 총을 쏘라고.


심지어 오사카 콘테넨탈 호텔에 쳐들어오는 적들이 입은 옷은 무슨 전국시대 무사의 복장과도 비슷하다. 최고위원회는 그 동네 분위기를 맞춰 복장까지 지정해주는 패셔니스타들이란 말인가. 여기에 견자단이 출연했을 때부터 익히 예상되었던 중국 전통의 판타지스러운 동작들까지.


원래 존 윅 시리즈의 백미는 사실적인 격투 움직임과 특유의 탄창 속 총알까지 계산한 총격전 같은 게 아니었던가. 특히 롱 테이크로 이어가는 특유의 촬영 방식도 그렇고. 물론, 이전에도 살짝 오글거리는 건카타적 움직임 뭐 그런 게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런 액션 영화에서 충분히 허용되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그 도가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그냥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서 온갖 가오를 다 잡은, 그래서 오히려 피식 웃음이 터지는 그런 영화였다.





법의 무거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독특한 세계관이다. 1편부터 4편까지 동일하게 이 설정은 이어진다. 킬러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서약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주인공도 이 서약을 깨뜨리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 규칙 안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애쓴다. 물론 너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감이 있긴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그 설정은 계속 이어간다. 존은 최고위원회의 일원을 살해하는 큰 문제를 일으켰지만, 어찌어찌 다시 서약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번 영화의 빌런인 그라몽 후작이 존을 제거하려는 방법도 어찌됐건 그 규칙 안에서 하는 일이다. 물론 좀 막무가내인 면이 있긴 했지만.


모두가 법에 복종하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을 가혹하게(대개는 죽음으로) 처벌하는 세상은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 같지만, 영화 속 세상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 법은 최고위원회가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한 법이고, 그 세계의 구성원들인 킬러들을 서로 싸움붙여 돈 이외의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느 순간 영화 속 규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캐릭터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금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해가 뜨기 직전에 약속된 결투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칙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한 부칙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 규칙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영화 속엔 그런 거 없다. 그냥 능력 있으면 살아남는 거고, 능력이 없으면 죽는 거다. 아, 능력주의라는 비틀린 공정을 말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도 그런 법을 좋아하는 양반이 있다. 입만 열면 공정을 운운하는데, 실제로 그의 통치행위는 별로 공정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정의롭거나 따뜻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하이테이블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느낌이랄까.





이젠 보내줄 때.


매트릭스 4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 존 윅 4를 보면서도 동일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젠 주인공 역인 키아누 리브스를 좀 보내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 내일 모레면 환갑을 맞는 이 배우가 이런 액션에 도전을 한다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그 결과물이 생각만큼 멋지지 않다. 물론 환타지스러운 중국 무협영화와 같은 합을 맞추라는 건 아니지만, 이젠 동작이 너무 느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실 그뿐 아니라 이젠 이 시리즈도 좀 보내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매트릭스 4야 모두가 인정하는 최악의 실망스러운 스토리로 스스로 시리즈의 생명을 끊어버렸지만, 존 윅도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는 너무 단순하고, 그걸 덮어버릴 화려한 액션도 이제 약발이 다 떨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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