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처한 교회음악 - 기독교인을 위한 필독서 101
프랭크갤럭 외 지음, 홍성수 옮김 / 두풍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메시지(음악)가 젊은이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음악이 주는 메시지의 가치기준과 메시지의 성격이 반복을 거듭하면서

젊은이의 마음은 감동받기 쉬운 상태가 될 것이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강력하면서도 감정적인 음악의 매개체에 노출됨으로써

그 메시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의 마음을 채울 것이고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 요약 。。。。。。。                     

 

     저자는 현대의 교회음악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전제 아래 책의 내용을 진행시킨다. 구체적으로 그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록 음악을 교회음악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록 음악’이라는 수단 자체에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노래가 주는 영향력에 있어서 그 가사보다는 음악 자체(멜로디와 리듬)가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록 음악의 경우에는 그 음악 자체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바꾸어도 교회 안에서는 사용하기에 어렵다는 것이다.

 

 

. 감상평 。。。。。。。                   

 

     어떤 것들을 대할 때, 그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향성’까지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기본적인 전제에는 동의한다. 때로는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내용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법이니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하루에 여섯 시간씩 강력하면서도 감정적인 음악의 매개체에 노출됨으로써 그 메시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의 마음을 채울 것이고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저자들(이 책은 공저로 되어 있다)은 록음악에 대해 매우 경계하는 입장을 취한다. ‘위험에 처한 교회음악’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저자들이 보는 ‘위험’은 록음악이 교회음악 안으로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록 음악이 가지고 있는 ‘관능성’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감정은 악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악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역시 악하며, 록음악이 그런 기능을 하므로 그것은 악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삼단논법을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매우 확고한 것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주장은 매우 극단적인 반문화적 견해나, 혹은 엘리트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고 전자만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를 즐겨하던 고전문화 이론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선 저자의 논지의 핵심적인 전제인 ‘어떤 감정은 악하다’는 문장은 과연 옳을까? 이 문장은 ‘어떤 감정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감정 중 본질적으로 악한 감정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어떤 감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분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분노조차도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악을 ‘미워하고’, 사탄을 ‘대적하라’고 강하게 권하고 있다. 즉, 분노와 같은 파괴적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한 방향을 향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악을 향해 있을 때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관건은 ‘구조’가 아닌 ‘방향’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오류는 어떤 음악의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때문에 특정 장르, 특정한 비트, 특정한 악기와 기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성경의 진술과는 모순된다. 성경의 내용에 충실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악하지는 않으며, 다만 인간의 타락과 그 영향력으로 인해 그것의 방향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그것들을 비난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본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록 음악 자체가, 그것에 사용되는 악기나 특정한 리듬, 또는 전자적으로 소리를 변형, 증폭시키는 어떤 기구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주장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이 기존에 나와 있는 모든 록 음악을 교회 안에서 노래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록음악이 태생적으로 6, 70년 대 영국과 미국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약물들, 극단적인 체제의 부정, 변태적인 섹스나 인간관계 등의 요소들을 안고 성장해 온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 흐름을 그대로 이어 받아 자신이 만든 음악에 그런 변태적이거나 건전치 못한 사상들을 섞어 짜 내려간 노래들이 많고, 이런 것들은 분명히 경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방향의 문제이지 본질이나 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록 음악 안에 있는 타락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정련 시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멀리하고 매장시키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개인적으로는 록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록 음악에 관한 변론 아닌 변론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르게 회복시키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꽤 극단적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그리스도인들도 비종교적이면서 훌륭한 음악은 들을 수도 있고 또 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원론적인 태도가 묻어 있는 진술이다. 사실 인간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그 자신의 종교적 신앙이 함께 나타난다. 특별히 예술과 관련된 부분에는 이러한 경향이 좀 더 분명하고 강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비종교적인’ 무엇을 상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문제 이외에, 현대의 교회 음악이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적, 인간 중심적 경향에 대한 지적은 매우 날카롭고 타당하다. 또, 매체 자체의 본질적인 악함이 아니라 작곡자의 경향성에 대한 비판 부분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 책은 구체적인 추론 과정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대부분 단언과 유리한 어구들(성경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만 나열하는 모습이다. 사실 이 책의 논리적인 연결은 최초에 등장한 몇 문장의 삼단논법이 거의 전부이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