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한니발의 일생을 차분하게 정리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정보야 새로운 뭔가가 발견되지 않는 한 대개 한정적이고, 그걸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인데 나름 성실하게 정리해 놓은 듯. 다만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2권 쪽이 재미도, 그리고 오히려 전문성도 좀 더 높아 보인다는 게 아니러니하달까.
물론 학자와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 차이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한니발 전문 연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을 맛깔나게 쓰는 좋은 작가도 아니라는 점이전반적인 평점을 떨어뜨린다. 예컨대 책의 영문제목은 “Rome's Greatest Enemy", 즉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한니발)인데, 한니발이 어째서 로마의 ‘위대한 적’이었는지는 단순히 설명으로 서술할 게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을 쓰는 쪽이 훨씬 흥미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훨씬 더 낫다.
그렇다고 책 전체에 걸쳐서 당시 상황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자주 발견되는 것도 아닌지라 굳이 읽어야 할 필요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몇 가지 사소한 정보들을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은 있다. 예를 들면 저자는 한니발 전쟁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도시들이 로마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니발에 편에 섰다고 말하는데, 이건 로마빠인 시노오 나나미의 책에서 보이는 일사불란한 로마연합의 이미지를 깨준다. 또, 한니발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북아프리카 출신의 황제인 셉티미우스가 한니발을 자신의 선조로 보고 그의 무덤을 복원했다는 내용은 새로웠고.
다만 저자는 한니발이 로마를 굴복시키지 못했던 것은, 로마가 당시의 일반적인 전쟁 관례와 달리 엄청난 피해를 입고도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 즉 로마가 당시의 전쟁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건 좀 빈약한 설명 같다. “한니발이 이기지 못했던 것은 로마가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게 어떤 새로운 의미가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