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겁다. 한없이 늘어지는 준비 과정과, 막상 스위스에 도착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들, 그 와중에 지인들을 무심히 배려하는 “그”의 모습. 마침내 당일 일이 진행되고, 돌아온 후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마음과 지난 일을 복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까지 모든 작업이 느릿하게 진행된다.
온라인서점인 알라딘에 이 책에 관한 100자평이 좀 우습다. 하나같이 1점이라는 괴상한 점수를 부여하고 있는데, 물론 이 책이 명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1점이 부여될 정도의 형편없는 글은 아니다.
주된 이유는 작가의 기독교 신앙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스위스로 갈 때까지만 해도 종교를 갖지 않았던 작가가, 귀국 몇 개월 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을 쓸 때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그날을 해석(자살은 옳지 않다)했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물론 이런 식의 비난은 별 가치도, 의미도 없는 공감과잉의 결과일 뿐이다.
애초에 돌아가신 분의 삶과 품성에 대해서 작가는 어떤 비난도 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선택 자체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물론 작가가 선택한 해석이 기독교 전체의 유일한 해석은 아니고, 또 굳이 그 이야기를 여기에 덧붙임으로써 “그”의 죽음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최선이었나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글쓰기 방식으로 썩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죽음에 대해 뭐라도 덧붙여야 할(그래서 다른 사람은 가능하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과도한 PC주의나, 죽음에 대해서는 무조건 특정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일방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돌아가신 분이 굳이 작가를 초청했고, 그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면, 그 방향까지는 뭐라고 쓰던 별 상관은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