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신아연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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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고난주간, 우연히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은 제목처럼,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되어 있는 스위스에 다녀온 작가가 그 경험과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스위스에 가게 된 동기가 독특하다. 오래 전부터 작가의 글을 읽고 알고 있었던 한 독자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고, 기대수명이 얼마 남지 않으 상태로 큰 고통을 겪고 있던 그는 안락사 신청이 받아들여졌으며 작가가 자신의 그 마지막 여행에 동행해 주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표해왔다. 그는 일찍이 호주로 이민을 간 한국인으로, 이 여행에는 아내와 다른 지인들도 초대해 놓은 상황이었다.


처음 만나는 상대와 함께 안락사를 위한 스위스 여행에 동행이라니... 책 초반에는 이 초대에 일단 응하기로 하고서도 계속해서 고민에 빠지는 작가의 모습이 실려 있다. 사실 누구라고 해도 이런 초대에 응하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가 특별히 자신을 지명해 초대했다는 점과 작가로서의 모험심, 즉 이 여행을 통해 뭔가 글을 남길 수 있겠다는(그건 “그”의 요청이기도 했다) 생각이 어울려서 따라나섰던 것 같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겁다. 한없이 늘어지는 준비 과정과, 막상 스위스에 도착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들, 그 와중에 지인들을 무심히 배려하는 “그”의 모습. 마침내 당일 일이 진행되고, 돌아온 후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마음과 지난 일을 복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까지 모든 작업이 느릿하게 진행된다.


온라인서점인 알라딘에 이 책에 관한 100자평이 좀 우습다. 하나같이 1점이라는 괴상한 점수를 부여하고 있는데, 물론 이 책이 명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1점이 부여될 정도의 형편없는 글은 아니다.


주된 이유는 작가의 기독교 신앙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스위스로 갈 때까지만 해도 종교를 갖지 않았던 작가가, 귀국 몇 개월 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을 쓸 때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그날을 해석(자살은 옳지 않다)했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물론 이런 식의 비난은 별 가치도, 의미도 없는 공감과잉의 결과일 뿐이다.


애초에 돌아가신 분의 삶과 품성에 대해서 작가는 어떤 비난도 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선택 자체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물론 작가가 선택한 해석이 기독교 전체의 유일한 해석은 아니고, 또 굳이 그 이야기를 여기에 덧붙임으로써 “그”의 죽음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최선이었나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글쓰기 방식으로 썩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죽음에 대해 뭐라도 덧붙여야 할(그래서 다른 사람은 가능하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과도한 PC주의나, 죽음에 대해서는 무조건 특정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일방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돌아가신 분이 굳이 작가를 초청했고, 그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면, 그 방향까지는 뭐라고 쓰던 별 상관은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괴로운 여행을 결정하고, 그 모든 과정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려고 했던 “그”의 생각과 심정에 더 큰 관심이 갔다. 자신이 죽을 날짜를 정하고, 그걸 알면서도 그 길을 향해 나서는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치 이번 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그분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걸어가면서 들었던 생각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두 죽음의 의미나 효력이 비슷하다는 건 아니다.)


기독교인들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 아들의 결연하고 당당한 행보 정도로만 여길 때가 있다. 하지만 겟세마네에서의 처절한 기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분도 여느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불안, 초조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죽음은 누구라도 함부로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오히려 그분이 맞이하신 죽음을 좀 더 생생하게 상상할 때, 우리가 일으킨 죄의 결과의 파괴력에 대해서도 더 실감나게 인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역시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꽤 아쉽다. 안락사(조력사)의 신학적 문제를 지적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꽤 담담한 시선으로 조력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심리상태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읽을 만한 내용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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