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으로 말해서 현대인들은 사물을 오직 스마트폰을 통해서 경험한다. 스마트폰을 건드리고 쓰다듬는 동작은 거의 예배와 맞먹는 몸짓(35)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해 경험된 세계는 실제 세계와는 다르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건 실제의 사물이나 대상이 아니라, 오직 내가 원하는 것으로서의 사물(즉 나의 기호, 나 자신)일 뿐이다. 저자는 그래서 스마트폰이 “자폐적 대상들”과 비슷하다고도 말한다(46).
오늘날 사람들은 관계 역시 디지털로 이어가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관계를 저해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84). 우리는 서로 접속해 있을 뿐, 실제로 만남을 갖지는 못한다. 한 때 온라인 소개팅이 유행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런 관계는 관계라고 부를 수 없는 마주침에 불과하다. 디지털을 이용한 접속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강한 결속, 특히 서로를 향한 충성의 마음에 기반한 단단한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어쩌면 요새 일종의 밈처럼 떠도는 MZ세대의 극도의 이기주의적 성향은 이런 디지털 문화의 최종적 결말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상대방을 차단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어폰을 끼고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내 스케쥴에 따라 관계를 오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답이지 않겠는가.
군데군데 눈에 와서 박히는 문장들이 제법 있다.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현실을 보며 불안을 느끼는 학자의 시선은 공감이 간다. 다만 이게 디지털화를 보는 유일한 시선은 아닐 수 있다는 건 기억해야 할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