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그 중에서도 중세 서양사를 이해하려면 자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 기독교와 이슬람교다. 두 종교 모두 아브라함에게서 그 정신적 뿌리를 찾고 있는(여기에 유대교까지 포함해 세 종교를 아브라함 계통 종교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실제 관계를 맺는 방식은 매우 미숙했다. 우리에게 익숙하게 남아있는 십자군이나 지하드가 그 대표적인 이미지고.
그러면 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싸우기만 했을까? 이 책은 이슬람교가 시작된 7세기부터 양측이 세력이 동쪽으로는 오스만제국의 진출로 유럽이 위기감에 휩싸이고, 반면 서쪽으로는 레콩키스타의 완성으로 이슬람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물러나게 된 15세기까지의 약 9백 년 간의 이야기를 크게 훑어가며 다룬다.
사실 이 정도의 내용을 담자면 전체적으로 책의 볼륨이 상당히 두꺼워져야 할 텐데, 이 책은 생각만큼 두껍지 않다. 에필로그에 번역자 후기까지 합쳐도 280쪽이 안 되는 정도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꽤 짜임새가 있다. 이슬람의 발흥부터 시대의 흐름을 따라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양편의 상황을 오고가며 잘 서술하고 있다.
특히 서술의 방식에 있어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한두 개의 사료에 근거해서 당시 시대상을 단정 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기록이 있다면 그 기록의 진위를 먼저 판별해야 하고, 그 기록이 담고 있는 사실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사실인지도 가려야 한다. 또, 일회성을 갖는 사건인지, 아니면 저변에 두루 퍼져있던 관행인지도 알아야 하고.
저자는 자주, 자신이 인용하고 있는 기록이 그것을 남긴 당사자들만의 기록인지 좀 더 널리 퍼져있는 관행인지 분명치 않다고 덧붙인다. 이런 태도는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이 책의 주제를 다루는 데도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 서술은 최대한 중립적인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지면서도, 중요한 포인트에서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