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구로카와 유지 지음, 안선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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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다수많은 뉴스들이 나오면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제법 높아진 것 같다전에는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짚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이 책은 그런 우크라이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가는 책이다.


사실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는데막연히 유럽이나 미국쪽 역사가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그런데 흥미롭게도 저자가 일본인이다주 우크라이나 일본 대사를 역임한 외교관으로 우크라니아 연구회라는 조직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고.


대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차관급 대우를 받는(일부 국가는 장관급고위 공무원이다이런 고위공무원의 경험은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기도 하고그런 경험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서 일반인들과 나눈다는 건 엘리트의 사명 비슷한 것이기도 할 듯하다확실히 못난 점이 적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지만이런 부분에서는 닮아야 할 부분도 많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이다남부 지역에는 비옥한 땅이 있어서 엄청난 농업생산력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고그래서 최근 전쟁으로 이 곡물 추수와 수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기도 했을 정도다지리적으로도동유럽의 최동단에 위치해 러시아와 서쪽 유럽 사이를 잇는 통로이기도 하고남쪽으로는 지금은 러시아에 의해 불법 점유되고 있는 크름반도를 통해 흑해로 연결되는 자리이기도 하다이런 중요도에 비해 우리의 관심과 지식은 얼마나 적은지...


책은 이 흑해 북부 연안에 살았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스키타이인으로 시작한다물론 이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인들과 직접적인 혈연적 연관은 부족하지만아무튼 그 지역의 역사를 말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BC 8세기 경 이 지역으로 들어온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인은 상당 시간 동안 꽤 번성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황금유물을 남겼다.


이후 오랫동안 여러 유목민족들이 지배하던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슬라브족이 나타나게 된 건 9세기나 되어서였다비로소 키예프 루스라는슬라브족 계통의 최초의 중요한 정치적 실체가 등장한 것이다이 나라는 오늘날 러시아벨라루스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기원 격이 되는데그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자신들이 이 국가의 후예임을 자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몽골의 침입으로 약화되었고동쪽에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모스크바 대공국이 나타나 세력을 키우고서쪽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등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다이 기간 동안 자생적인 무장집단인 코사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그 수장인 헤트만이 사실상 지배하는 지역이 나타났다일명 헤트만 국가.


그러나 헤트만 국가는 태생적으로 불안한 지위에 있었고결국 이 땅은 동쪽의 (모스크바 대공국을 이은러시아 제국과 서쪽의 (폴란드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분점되는 상황을 맞는다. 20세기 초 독립을 위한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난립했지만 결국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러시아 제국의 뒤를 이은 소련 치하에 들어가고이 기간 엄청난 수탈과 희생을 겪게 되었다그리고 마침내 1990년 대 초 소련의 붕괴를 틈타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얻어낸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경험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뭔가 웅장한 음악을 들은 것처럼 감동이 느껴지기도 하고그 안에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면서 답답할 때도 있다당연히 이런 긴 역사에서는 배울 점도 많고물론 정리된 역사를 보는 우리와 달리실제 그 역사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는 게 어렵긴 하지만그래서 우리가 더 역사를 익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자가 일본인이었기에책 가운데 종종 일본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부분이 눈에 띤다동아시아 끝자락에 있는 일본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사이에 무슨 역사적 공통분모가 있을까 싶지만우크라이나와의 작은 만남도 책 속에 몇 문단으로 넣을 수 있는 것도다 이런 책을 쓴 사람의 특권이겠지 싶다.


그래도 스키타이의 황금 유물을(물론 신라를 언급하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도 아니고 그 후대의 일본과도 뭔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처럼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부분은 살짝 웃음이 났다한반도를 통해 문화를 수입하고 발전시킨 일본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안달하는 일본 역사학계의 초조함이 엿보인 달까.


그리 어렵지 않은 문체와너무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를 전체적으로 훑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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