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영화의 주인공 월터는 시도 때도 없이 멍 때리는 일이 빈번하다. 멍 때리는 게 일종의 뇌의 재부팅과 비슷하다며 가끔 그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이쪽은 상태가 좀 심각하다. 엘리베이터 안이나 사람이 많은 광장 한 쪽에서도 멍 때리기 일쑤니까.
그런데 월터의 멍 때리기는 엄밀히 말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 시간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친다. 마치 마블 영화 속 히어로처럼 밉상인 직장 상사를 때려눕히기도 하고, 짝사랑 하는 상대와 로맨틱한 연애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대낮에 일어난다는 면에서 백일몽(白日夢)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심리학에서 백일몽은 도피기제의 한 형태라고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매커니즘. 그런데 그 상상이 너무나 달콤하니까, 현실에서 주지 않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짜 세계에 오히려 적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영화 속 월터도 비슷했다. 16년째 회사에서 사진현상이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주목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그는 온라인 연애사이트의 프로필란에 변변한 취향이나 경험을 채울 수조차 없었다. 그런 그의 상황을 바꾼 건 상상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