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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 임지이 그림 에세이
임지이 지음 / 빨간소금 / 2022년 9월
평점 :
30대 후반의 나이로 다니던 출판사에서 퇴직을 하게 된 작가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출판 관계 일은 하지 않는다, 회사에 들어가지 않는다. 본격 프리랜서의 삶이 시작된 건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사는 데는 (정확히 말하면 그냥 숨만 쉬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고, 넉넉한 재정적 지원을 해줄 부모가 있지 않는 한 퇴직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처음엔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일들을 시도해 보면서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보내던 저자도, 결국 다시 일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회생활 시작부터 해 온 일이 출판 관련 일 뿐이었으니 그 쪽이 일과 연결되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났으니, 바로 만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몇 권의 책에서 만화작가로 참여한 후, 이 책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사실 이야기 자체에서 뭔가 신기하거나, 깊은 통찰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내용 중 일부에 따르면, 저자 자신이 그런 감동에 노이로제를 가지고 있어서(어쩌면 이 또한 언젠가 깨질 고집일 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야기는 조금은 억(지)텐(션)을 끌어올려 일상을 개그화한 만화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던 건, 역시 작가가 처한 상황과 내 상황 사이의 유사점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여긴 쉽지 않은 일인지라, 작가가 경험했던 다양한 고민들, 그 때의 불안한 심정과 마음이 어땠을지 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책 제목이 단순히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한 만족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작가 자신의 결심일 수도 있고, 약해지지 않도록 되뇌는 표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자신의 삶이 하루하루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일상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용기다. 그렇게 낸 작가의 용기가 그 글과 그림을 보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는 일이다.(내 경우엔 살짝 약했지만) 작가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