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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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실에 채용된 여당의 청년대변인의 일베 전력이 밝혀져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다나름 고민해서 낸 해명이라는 게, “가족들 사이에 아이디를 돌려쓰고 있다”, “동생이 몇 개 이상한 글을 쓴 것 같다(나는 아니다)”였는데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옹색하고 졸렬하다.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이런 변명이라도 둘러대야 할 정도로우리 사회에서 일베 전력은 부끄럽거나감춰야 하는 행적이다그 사이트의 게시물에 등장하는 배설하는 온갖 패륜혐오임의로 편집해 만든 거짓과 조롱은 사이트 이용자들의 인격과 사회성을 의심하게 만든 지 오래되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일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확실히 제목이 중요한 게이런 제목이 붙어 있으면 한 번쯤 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게다가 뒤늦게야 확인한 표지도 압권이다흑백으로 그려진 평범한 거리 풍경 속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렸는데그 중 일부의 머리 부분이 파란색의 바이러스나 뭔가 폭발하거나 흘러내리는 기괴한 모양을 띄고 있다차도 쪽으로 흘러나온 파란색 유동성 물질은 차가 지나가면서 인도 쪽으로 튀기도 하고다시 보니 꽤나 공을 들였다

.


책 제목과 함께 이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일베는 보통 사람들’ 중 섞여 있으며그들이 튀긴 일베스러움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





기본적으로 저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답게사회학 연구의 기본과정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석사논문도 이 정도는 써야 통과가 되는 법이다우선은 일베가 나오기까지의 한국사회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사를 훑는다.


기본적으로 유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사이트들이 발전분화의 과정을 거쳐 일베에 이르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일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를사회적으로는 팩트중심주의와 참여주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요소고.


이어서 메타 데이터 분석 방식을 사용해일베에 올려진(그리고 연구 당시까지 남아있던모든 게시물들을 분류해그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키워드를 뽑아내고이를 통해 일베 이용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를 추적하는 과정과직접 일베 이용자들을 만나서 진행한 인터뷰와 그 분석이 더해진다.






이런 예비적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일베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시도한다그들은 우리가 흔히 일베 하면 떠올리는 과격한 극우집단이라기 보다는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자신들이 바라는 (이전 시대에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던안정적 가정을 얻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좌절해 자조감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라는 것.


요컨대 일베혹은 일베 현상이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안정해진 오늘날의 사회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말로 들인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배설하는 온갖 텍스트의 쓰레기들까지 온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은 채 그저 욕만 한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다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이 일베화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이런 분석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 않나 싶다. 20대 남성이 주류라고는 하지만 이미 10대 청소년들의 보수화또는 일베화도 상당부분 진행되었다는 조사도 있는데이들 또한 비슷한 프레임으로 분석이 가능한 것일까, 10년 전 20대였던 지금의 30대와 그 이상들은 일베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는 이준석이라는 일베의 현신을 마주하고 있다말과 글이 육신을 입는 일종의 성육신의 일베 버전이다헌정 사상 처음이니 뭐니 하는 과장된 수식어를 동원해 가며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지만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느꼈다.


물론 극단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이나 집단은 언제든 쉽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긴 했지만이준석이 비판하며 싸우는 대상 중 하나인 기존의 보수세력은 그래도 최소한 눈치는 보고염치는 지키려는 시늉은 하지 않았던가수해 현장에 와서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던가같은 상황이라면 이준석은 어떻게 했을까?


그랬던 그가 당에서 축출되는 상황에 몰리면서눈물을 짜며 억울하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개인적으로는 그가 이전에 약자들을 향해 내뱉었던 말들이 자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이런 쿨하지 못한 모습을 또 일베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베에 관한 괜찮은 사회학 연구서주제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페이지가 적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금세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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