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책은 흥미로운 내용을 덧붙인다. 그렇게 황제의 명령을 받아 인도양을 누볐던 정화가, 동남아시아 각국, 특히 말레시아에서는 거의 신적 존재로 숭배되고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말레이시아에는 특이한 성격의 종교적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 신앙이 혼합된 사당, 혹은 사원이 그것. 중앙에는 불상이 있지만 한 편에는 정화의 형상이, 또 다른 편에는 관우상이 동시에 세워져 있는 모습니다. 이것도 재미있는데, 더 흥미로운 건 ‘정화 모스크’라고 불리는 이슬람 사원들이다. 대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있고, 기와까지 얹어져 있는 중국식 건물인데 모스크의 기능을 한다는 거다.
그 배경에는 말레이시아에 이주한 화인, 즉 중국인들이 겪었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이주한 건 식민지 시절로, 유럽의 통치자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중국 이주민들을 대거 정착시켰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소규모 이주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데 말레이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배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생겼다. 식민지배 시절을 거치며 소수의 이주 중국인들이 원주민보다 더 큰 부를 쌓으면서 그들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화인들도 대거 공산당에 가입하고 정치기구를 만들어 인도네시아 정치에 개입하려 하면서 더 큰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60년대 후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 시절에는 강력한 반공주의의 결과로 중국 문화와 신앙, 전통 자체가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화인들은 지역 문화와의 동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정화 숭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정화의 아버지는 서역에서 온 무슬림이었고, 그런 정화와 그의 일행이 인도네시아에 이슬람교를 전해준 인물이라는 것. 국민의 절대 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을 줄여주는 데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