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흘리는 경쟁.
영화의 중심에는 방송국 메인 뉴스의 앵커인 세라(천우희)가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점에 있는 하나의 자리를 바라보며 일하는 조직에서 성공하는 일은 얼마나 진이 빠지는 일일까.
영화 속에도 그런 치열한 경쟁이 드러난다. 끊임없이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가야 하는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그렇게 한 번 올라갔다고 해도 도전자들은 계속 나타난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의 특성 상 실수 한 번으로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는 위태로운 자리이기도 하다.
영화 말미에서 진짜 흘리는 피는 그래서 하나의 상징처럼 보이긴 한다. 물론 영화의 구성으로만 보면 좀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 끝없는 경쟁, 한 번 탈락하면 끝장인 무한경쟁 체제는 누군가를 밟아야 올라설 수 있는 잔인성을 지니고 있다. 경쟁은 발전을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두를 함께 지옥에 빠뜨리기도 한다.

이중인격?
주인공 세라는 결혼을 했는데도 어머니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고, 어떻게 보면 어머니에게 조종당하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영화 초반부터 이혜영이 연기한 어머니의 섬뜩한 모습에, 여기에 뭔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물씬.
하지만 그대로 가기엔 좀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영화 말미에 반전을 하나 넣어두었는데, 그게 바로 이중인격(정식 명칭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이라는 소재다.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무의식 중에 마치 다른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병을 가리킨다. 그 증상 자체가 확실히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공포나 스릴러 영화에 종종 사용되는 소재다.
영화는 실은 세라의 어머니가 이미 죽었고, 죽은 어머니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세라의 정체성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썩 개연성 있게 설명되지 않는 데다가, 세라의 엄마가 젊은 시절 같은 방송국 아나운서였으며, 세라를 임신함으로써(미혼모였다는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꽤 큰 스캔들이었을 듯) 숨어야 했다는 사연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가 좀 애매하다. 전반적으로 구성이 좀 아쉽달까.
여성을 중심에 둔.
직장 여성의 개인적인 성공과 임신으로 인한 경력 단절, 딸에 대한 모성애와 지배욕의 애매한 경계, 그 상대 개념으로 어머니에 대해 딸이 느끼는 구속감과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한 죄책감 등등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험을 중심에 둔 영화다.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정신과 의사 역의 신하균은 철저하게 설명을 담당하는 보조 캐릭터일 뿐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라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태동을 느낀다. 아기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방송국에서 일으킨 사건으로 세라는 다시 일로 복귀하기가 불가능해졌을 것이고, 당연히 사법처리까지 받아야 할 상황이다. 그런 그녀가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신호일까.
세라의 어머니는 임신 때문에 자신의 일을 잃어 버렸다는 분노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임신은 그녀의 길을 막은 장애물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결국 딸의 삶마저 망가뜨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원망과 함께 목이 졸리는 경험을 한 것이 결국 세라의 병증을 낳은 것 같으니까.
사실 모두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임신은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계기일 수도,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으니까. 결과가 달라진 건 개인의 결심 탓일까, 아니면 상황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