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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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목을 보고 손에 든 소설집이다. ‘선릉 산책’. 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고, 소설 속 선릉역 인근은 내가 가장 자주 돌아다니는 지역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돌아다녔던 거리의 풍경을 읽으면서, 기억 속 내가 봤던 골목들 어디쯤일까 하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좀 더 몰입이 됐다.


이 책은 일곱 편의 중편 소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표제이기도 한 ‘선릉 산책’은 그 중 세 번째로 실려 있는 작품. 각각의 이야기들은 등장인물도 내용도 독립적인데, 한 가지 공통적인 소재가 있는 것 같다. 모두 어딘가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게 그렇게 계속 어딘가로 걸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소설 속 ‘걷는 일’은 ‘살아가는 일’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일곱 개 이야기 속 인물들과 그들이 마주하는 사건들이 모두 개성이 있다. 다들 삶의 무거운 무게를 어깨에 지고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리 대화가 진행되어도 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벽에 부딪힌 건 아닌데, 뭔가 좀처럼 서로의 생각이 만나지 않는 달까.


예를 들면, 표제작이기도 한 ‘선릉 산책’ 속 주인공은 아는 형의 부탁으로 하루 아르바이트를 대신하게 된 인물이다. 그가 하게 된 일은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한 소년과 함께 선릉역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겨우 하루 동안의 시간이지만, 그리고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둘이 함께 선릉역 인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공감을 이루는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변주를 준다.


소년의 보호자로부터 세 시간만 더 맡아달라는 연락이 온 것.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주인공은 급격히 짜증이 치솟았고, 어둑해질 무렵 공원 어딘 가에서는 동네 양아치 청소년들과 사건도 발생한다. 서로 친해진 줄 알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투명한 장벽이 생겨버린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거기에 담긴 무게는 얼마나 가벼운지...



그렇게 모든 이야기 하나같이 말끔하게 끝나는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영 어영부영 밋밋하고 찝찝하게 끝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나름의 결말이 있는데, 그게 썩 공감이 되는 측면이 있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결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가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가볍거나 하지도 않다. 읽던 도중 다른 생각이 들거나 하지 않게 재미도 있고.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재능있는 작가 같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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