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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 - 한국사회 자살의 경향을 말한다
조성돈.정재영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5년 10월
평점 :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적으로도 높다. 이건 통계적으로 나온 사실이니까 뭐라 덧붙일 만한 게 없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걸까? 이 부분은 다양한 사회학적 조사를 통해 이유를 밝혀내야 하는 영역이다. 요새는 이런저런 조사들이 진행되어서 어느 정도 과학적 원인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이 문제에 관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교회다.
자살에 대한 교회의 관점은 그것이 ‘죄’라는 것이다. 어째서 죄일까? 생명을 해치는 것은 성경에 금지되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생명이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일반론적인 설명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거나 설명하지 않는 대답이다. 물론 원칙이라는 게 어느 정도 일반론이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긴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근거 없는 온갖 설명들이 덧붙여지는 경우다.
자살자에게는 구원이 없을까?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에 지옥에 가는 걸까? 뭐 이런 대답들인데, 명백히 성경적 근거가 부족한 속설들이다. 애초에 자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에 생기는 억측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한 사화과학적, 그리고 신학적 접근을 위한 예비조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비록 나온 지 10년도 넘은 책이지만, 이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더 발전한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이 책을 읽을 만하다는 의미.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자살에 대한 기초적인 사회학적 연구 결과를 정리해 놓은 것이고, 2부는 기독교적 입장을 정리하는 내용, 그리고 3부는 결론이자 부록 격의 몇 가지 자료들을 모아놓았다. 한국교회가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피하지 말고 좀 더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한 몇 가지 조언들이다.
1부의 내용이야 이보다 더 좋은 책을 찾아볼 수도 있을 거고, 이 책의 의미는 역시 2부다. 공동 저자들은 성경에서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각만큼 분명하거나 한 쪽 방향으로만(자살은 죄이며, 자살한 사람은 저주, 혹은 지옥행이라는 식의) 치우쳐 있지 않다고 정리한다. 하지만 정작 교회의 태도는 이보다 강경한 경우가 많다.
책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를 시도하는데, 교인들 중 자살 충동을 느끼는 비율, 그 대응 방식 등이 주요 내용이다. 흥미로운 내용은 자살의 신학적 의미에 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교회 속에서, 자살자들에 대한 대응 부분에서는 유화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자살자들에 대한 장례를 교회에서 맡는 일에 관해 약 70%가 찬성하고, 자살을 정신적 질병으로 보려는 입장도 85%가 넘는다. 이쯤 되면 교인들보다 목회자들의 의식이 더 뒤떨어지는가 싶기도 하고.
자살 예방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제안하는 부분도 짧지만 귀담아 들을 만하다. 특히 개인적인 심방과 소그룹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점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 이 부분에도 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그 자리에서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느냐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사실 이런 저런 내용들을 잔뜩 담고 있지만, ‘종합’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쉽다. 내용들 사이의 긴밀한 연계가 좀 부족한 느낌인데(이건 이후 정재영 교수가 참여한 한국교회탐사센터에서 내고 있는 책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리뷰에서 ‘정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종의 잡지를 보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내용인 건 맞으니까. 특히 실제로 설문을 통한 통계조사를 시도한 면이 인상적이다.
교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단언하려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한다. 물론 교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 독단적일 수밖에 없다는 면은 인정하지만, 성경의 제한된 설명을 기초로 삶의 일반적인 분야에 관한 새로운 교리를 구원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일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성경은 믿음과 구원에 관한 내용이지, 자살자가 천국에 갈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잘 모르는 건 모른다고 대답하되,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히고, 나아가 현재 문제가 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일에 (좀 따뜻하게!)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나서는 것, 그게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