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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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4억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는 인도는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세계에서 두 번째 인구 대국이다땅 넓이도 엄청나서 중부유럽에 속하는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 만할 정도괜히 인도 아대륙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땅이 워낙 넓다보니 그 모든 지역이 하나의 나라인 적은 거의 없었고수많은 나라들이 지역별로 분포하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던 인도는, 16세기 무굴 제국 시기에 오늘날과 비슷한 영토를 가진 나라가 세워진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 한 시대를 보낸 인도는 마침내 독립을 하고간디와 네루의 사상을 이어받은 좌파 정당인 인도국민회의가 오랫동안 집권을 해왔다하지만 80년대 이후 우파 정당인 인도 인민당이 종종 선거에서 이기면서 정권교체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2014년부터는 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 인민당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우파 정당이 집권을 하면서 인도의 정치경제 상황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가장 크게는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전환된 것인데자본이 부족한 나라들이 일상적으로 그렇게 하듯인도 역시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는 데 열심이었고이 과정에서 투자에 적합한’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난한 시민들의 대대적인 희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공업시설이나 상업지구를 건설하기 위해 그 땅에 살던 빈민들을 강제로 추방해 버렸고쫓겨난 이들은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이 이주민들이 사회적 안정을 해친다면 다시 쫓아내기 바빴다하지만 돌아온 이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모조리 헤집어진 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1부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 논리의 급속한 유입이 인도 사회에 일으킨 다양한 문제들과자본가들의 치밀한 사회지배 플랜에 대한 고발로 가득 채워져 있다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대한 교차소유를 통해(무기제조사가 방송국을환경과 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채굴업체가 신문사를 가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이익을 극대화하고 있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정부 관료들을 각종 장학금과 각종 지원금으로 길러내 정부 부처에 보내놓고는천연자원과 의료교육과 같은 분야까지 민영화하는 식으로 투자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낸다.

 

무서운 건 이 모든 과정이 대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기업들은 대규모 자금으로 기금을 조성해서자본주의적 사회에 맞는 인물과 단체들에게 지원하는 식으로 그들을 길들인다한 때 사회에 도전했던 단체들도 점차 이런 돈맛에 순응하며 점차 의제를 안전한 것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이는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가리지 않는데이제는 이런 직함 하나쯤 달지 않고서는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으니 기업들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사회지배 수단을 찾은 셈이다.

 


책의 2부는 오늘날 인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 보여주고 있는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다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도 사회에서는 다양한 피해자들의 항의가 격렬하게 벌어진다.


인도에서는 매년 1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는데상당수는 극심한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어 벌어지는 일들이다또 한 편의 저항은 적극적인 시민활동집회와 시위때로는 무장투쟁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현재 집권당을 이끌고 있는 모디 총리는 이를 무차별강경진압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근대화 이후 나타난 새로운 힌두주의인 힌두뜨와 이데올로기의 부상으로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악랄하게 전개되었을 뿐 아니라고전적인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 내 하층민에 대한 차별과 공격도 심각해졌다는 점도 현대 인도의 짙은 그늘이다.

 


사실 요즘도 종종 인도발 뉴스들을 접하면서 세상에 저런 나라가 있을 수 있나’ 싶을 때가 있다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이 일어나고그 근거도 꼴 같지 않은 신분제도를 지키겠다고 평범한 이웃을 개만도 못한 종족으로 치부하는 미개함을 어떻게 해결할까(하긴 이게 어디 그 나라의 일만일까우리에게서도 이런 미개함은 언제들 발견될 수 있으니까).

 

정권에 반대하는 인물들에 대한 불법적인 체포와 허술한 수사그리고 비논리적인 판결이 횡횡하는 인도 사회는 아직은 껍데기만 민주주의인 나라인 것 같다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우리식 민주주의라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내뱉던 군사반란 수괴들의 통치를 20년 넘게 받기도 했음에도(그리고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표 좀 얻겠다고 그런 반란 수괴를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대통령 후보가 또 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남 말 할 게 없어 보인다지금도 법을 무기로 불법을 무마하는 게 신기하지 않은 나라인데그걸 영구적으로 공고화하겠다는 공약도 나오는 판국이니.


결국 민주주의라는 건 완성되는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이건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깨어서 공동체를 위한 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일 텐데역사가 보여주듯 이 걸음은 늘 앞으로만 향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고발로만 가득 찬 이 책처럼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피를 흘리고빼앗겨야 다시 역사는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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