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문제 믿음의 글들 189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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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1장이 너무 어렵게 쓰였다는 점이다저자인 루이스는 텅 빈 우주와 사방이 고통으로 가득 채워진 세계가 기독교를 부정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발로 책을 시작한다그런데 루이스는 이 논리를 역으로 사용해서그렇게 고통과 허무로 가득해 보이는 이 우주에서왜 사람들이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자를 떠올리게 되었을지 이상한 일이라고 답한다(탁월한 말솜씨다).


그건 두려움 때문이 아니겠느냐고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대답을 상정한 후이제 루이스는 본격적인 논리를 전개하기 시작한다두려움에는 구분이 있으며단순한 무서움이나 공포감이 아닌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따로 존재한다고 말한다책에서 루이스는 이를 누미노제 경험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난코스다이 영어도 아닌 독일어 단어를 듣자마자 덜컥 겁이 나니까.

 

루이스는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일으키는 그 존재가 인간들에게 옳고 그름의 도덕적 기준을 내려준 존재와 동일하다고 여기면서 종교라는 것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이 과정은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일종의 도약이 필요하다실제로 경외감만 존재하는 신비주의적 종교나도덕률만 강조하는 자연주의적 종교가 인류 역사엔 적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기독교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감행하는데그 경외감을 주는 도덕률의 수여자가 실제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 한 인간이 되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요컨대 1장에서 루이스는 (1) 고통이라는 것이 반드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2) 오히려 특정한 종류의 두려움(경외감)이 우리를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우리가 그 경외감을 일으키는 분을 인정한다면 고통이 이 세계 안에서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갖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1장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면이후의 내용은 좀 더 명확하고 이해하기에 쉽다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모순되지 않는다.(2세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한 중립적인 장이 필요하며이로 인해 발생하는 괴로움에 매번 하나님이 손을 대신다면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또한 하나님의 선함은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려는 그분의 의지와 충돌하지 않는다.(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세상의 (최소한일부분은 분명 악하다고통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4). 인간의 타락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이 악의 문제가 어떻게 세상에 퍼졌으며우리에게 일종의 교정(그 부산물로 고통이 발생할 수 있다)이 필요한지를 설명해 준다(5). 고통은 때로 그런 악한 부분을 돌이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6).


지옥의 존재는 옳고 그름을 인정한다면 나오는 자연스러운 응보의 개념(보복이 아니라)을 만족시켜준다(8). 지옥을 선택하는 이들은 그들이 가장 원하는 상태(하나님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지 않고 그들의 자아에 고립된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동물들의 고통에 관해서는 그들이 영혼(자아)을 가지지 않았다면 고통을 겪을지언정 고통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볼 수 있다다만 고등한 동물 중 일부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좀 더 특별한 상태로 나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9).

 

우리 모두는 천국을 갈망한다다만 많은 경우 우리는 천국 그 자체와 천국의 열매를 혼동하곤 한다그 나라는 우리의 자아를 온전히 그곳의 주인께 내어맡길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며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루이스가 쓴 첫 번째 기독교 변증서이다젊은 교수였던 루이스는 고통에 대한 총체적인 기독교적 설명을 담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다만 그런 큰 포부 때문에 책 첫 머리부터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글쓰기를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약 루이스가 좀 더 원숙해진 후에 이 책을 썼다면누미노제 같은 어려운 학술용어보다는 좀 더 쉬운 일상의 언어로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그 부분만 넘어간다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고통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오히려 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우리의 타락한 현실악함을 생각한다면 고통은 매우 중요한 신의 도구이며그 고통의 거의 최종적 형태로서의 죽음조차도악이 영구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막는 불가피한 조치일 수도 있다.


이런 명쾌한 논리와 함께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루이스가 사용하는 풍성한 비유와 상징들이다선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네 가지 비유는 단순한 설명보다 훨씬 더 생생한 그림이 떠오르게 만들고그가 그려주는 그림은 금세 푹 빠지게 만든다.


물론 루이스가 말하는 일부 내용에는 신학적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루이스는 전적 타락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효화시킴으로써 구원을 수동적인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지옥에 관해서 그는 영원한 의식적 형벌설이 아니라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존재의 비인간화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관해서 루이스는 자신이 신학자가 아니며교정을 받을 충분한 의향이 있음을 책에서도 밝힌다그리고 솔직히 말하면이런 내용들은 무슨 대단한 신학자라고 해도 자신이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순전한 기독교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함께, C. S. 루이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이후 루이스의 변증적 저작에서 자주 보이는 글쓰기 방식이 이미 등장하기 시작하기도 하고여러 모로 중요한 책.


물론 이 책은 철저하게 논리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다룬다생의 후반 아내인 조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루이스가 겪었던 슬픔과 고통에 관해 적은 또 다른 책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이 주제에 관한 좀 더 실천적인 반응이 엿보인다가능하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알게 된 루이스의 개인적인 일화 하나이 책을 쓴지 11년 후 루이스는 이하선염이라는 병에 걸려서 심한 통증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그 때 루이스의 주치의이자이 책의 부록(책의 가장 마지막에 붙어있다)을 쓰기도 한 하버드 박사가 통증을 호소하는 루이스에게 이 책의 몇 구절을 만날 때마다 읽어주자루이스는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버드 박사가 만날 때마다 고통의 문제를 몇 구절씩 인용하고 있는데그 책의 내용이 좀 심하더구만."


언제나 위트를 잃지 않는 루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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