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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18년 11월
평점 :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금세 완전한 인격과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현실도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리라.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수많은 유혹을 받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더 크고 끈질기고 강력한 유혹을 경험하게 된다. C. S.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말했던 것처럼, 유혹에 저항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끝이 얼마나 되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C. S. 루이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바로 그 ‘유혹’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담아낸다. 그것도 유혹이란 어떤 식인지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악마의 입장이라면 어떤 식으로 유혹을 할까를 상상해, 후배 악마에게 조언을 하는 구성이라는 신박한 아이디어로 읽는 재미마저 더해준다. 이런 탁월한 작가 같으니라고.
원래 한 신문에 매주 연재되는 식으로 썼던 이 책을 두고, 루이스는 나중에 ‘매우 힘들었다’는 고백을 한다. 자신이 악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유혹의 기술을 써내려가는 일이 그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독자들은, 그리스도인을 유혹하는 악마의 교묘한 전략에 대해 효과적으로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책은 서른한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상급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이자 하급악마인 웜우드에게 유혹의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내용이다. 루이스는 책을 통해, 신앙을 감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게 하고, (실제 현실에서 떠나) 오직 영적인 차원의 것에만 집중하게 하거나,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혹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신앙의 현재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신앙은 내일 받게 될 잔치상을 위해 오늘 굶는 게 아니라, 미리 맛보며 오늘을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매일 만나는 실제 사람들과 특별해 보일 것 없는 일상적인 일들로부터 떠났을 때, 우리는 천국에서 가장 멀어진다. 한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전 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좇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당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버리는 것이다.
오래 전 첫 번째로 읽었을 때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몇 번을 봤지만) 최근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에 깊이 와 박히는 문장들이 훨씬 더 많음을 느낀다. 확실히 루이스 정도의 작가가 쓴 글은, 그걸 읽는 사람이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서 더 많은 게 보이는 것 같다.(또 꼼꼼히 읽을수록 더 많은 게 보이는 책이다)
루이스가 살던 시대와 오늘은 수십 년의 시간적 갭이 있지만, 그의 조언은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좀처럼 완전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유혹은 우리가 “됐다” 싶을 때 새롭게 찾아온다. 우리가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불평과 짜증, 자기에 대한 손톱만한 애착이 우리를 유혹에 빠뜨리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고전이란 이렇게 시대를 지나도 새롭게 와 닿는 작품을 가리키는데, 루이스의 책은 대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펴봐야 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