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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4년 11월
평점 :
대화.
이제는 마블의 ‘블랙 위도우’로 잘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이 맡은 역할은 지구로 보내진 외계인인 듯하다. 그는 마치 옷을 갈아입듯 사람의 모습을 ‘입는데’, 처음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곧 ‘로라’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스코틀랜드의 거리를 운전하며 돌아다닌다.
그녀가 지구에서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영화 소개 페이지에는 ‘식량’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식량의 존재는 인간인 것 같다. 그녀는 여러 남자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녀의 미모를 본 남자들은 곧 그녀와의 관계를 위해 따라 나선다. 앞서서 옷을 한 장씩 벗으며 걸어가는 그녀를 따라 옷을 모두 벗고 걷다보면, 남자들은 어느새 이상한 액체 속으로 빠져들어 사라진다(‘식량’이 되었나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과정에서 그녀와 남자들 사이에 대화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별 의미 없는 한담을 몇 번 주고받긴 하지만, 남자들은 쉽게 처음 본 그녀를 따라 나선다. 남자들은 그녀의 외모에만 집중할 뿐 그 살갗 아래(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언더 더 스킨’) 무엇이 들어있는 지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물론 영화니까 ‘외계인인데’ 하는 생각이 들지, 일상에서 그런 의심을 할 리는 없긴 하다). 온통 ‘보이는 것’만 따라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렸던 걸까. 이런 사람들에게 ‘대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탐색.
영화 외계인은 초반 지구로 보내지기 위해 뭔가를 배우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발음과 철자가 유사하거나 같은 영어 단어들을 반복하면서 습득하는 중인데, 그 탐색은 지구에 도착해서도 계속 이어진다. 앞서 언급한 ‘적은 대화’ 속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뭔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대화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대부분의 상대는 하룻밤을 넘기기 못하고 모두 ‘식량’이 되어버리지만, 유독 한 남자만이 이 단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로라’를 하룻밤을 보낼 상대로 여기지 않았고, 그렇게 로라는 인간과 그들의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종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는 얼마나 많은 난점이 존재할까. 대부분 이 ‘탐색’의 단계는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온갖 종류의 오해와 곡해, 그리고 자연스럽게 적대감이 흘러나온다. 로라의 ‘몸’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결국 마치 자신들의 욕망에 빠져 질식하는 것처럼 액체 속으로 가라앉아버린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는 일 자체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건, 오늘날에도 좀처럼 그치지 않는 다양한 규모의(개인들 사이만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도 벌어지는) 분쟁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마지막에 로라가 만난 벌목기사의 모습을 보면 탐색과 신뢰, 이해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분위기.
영화 포스터 하단에 ‘그녀가 벗는다’라는 홍보문구가 불쾌하다. 물론 영화 속에 노출장면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몽환적인 필름의 분위기에, 딱히 성애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런 문구를 떠올린 사람은 이 ‘벗음’을 옷가지만이 아니라 인간의 피부 아래쪽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포함하는 중의적 의미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면 더 멍청한 생각이었고. 안 그래도 많은 설명이 부족한 영화에 이런 식의 문구를 붙이면 어쩌겠다는 건지. 홍보능력으로서는 꽝이다.
많은 대사가 나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부족하다. 여기에 영화의 분위기도 오래된 필름의 느낌을 주고. 덕분에 보는 사람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이런 부분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중 하나일 듯.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조금 더 친절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스타일리쉬한 영상과 분위기만으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