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양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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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1984는 이미 우리말로도 다양한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이 책은 유독 자신들의 번역을 강조하고 있다예컨대 책 표지에는 저자명과 번역자명이 거의 같은 크기로 실려 있기까지 하다번역자는 원서의 느낌을 가능한 그대로 살려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는 쪽(문자적 번역에 가까울까?)으로그것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신어에 관한 보유(補遺)’에서 이 문자적 번역은 중요하게 기능한다원서는 이 부분이 모조리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데실제로 다른 번역의 경우 단순히 현재형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보인다하지만 이 부분의 과거형은 책의 전체 결말을 뒤집는 열쇠가 되는데책 말미 윈스턴이 총살을 당하면서 빅브라더 세력의 승리를 그리는 것 같았던 작품이그 시대의 언어(신어)를 과거형으로 묘사함으로써 이미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

 

이 정도의 차이가 벌어지면 시제의 직역이 중요했겠다 싶으면서도또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는 느낌이니그래도 가능하면 원서의 구두점까지도 그대로 살리려고 애쓴 번역이라면 읽어 볼만은 하겠다 싶다.

 





소설은 가상의 미래(물론 지금으로 보면 과거겠지만)를 배경으로 전체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초국가를 다룬다소설 속 언급되는 사건들로 볼 때인류는 1900년 대 중반에 핵전쟁을 경험했고이후 남은 사람들은 유라시아와 동아시아그리고 오세아니아라는 세 개의 나라로 결집했다그 중 주인공 윈스턴이 사는 곳은 오세아니아다.

 

오세아니아의 정치제도는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그 중심에는 내부당이 있다모든 것은 당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며그 정점에는 빅브라더라고 불리는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자 영원한 찬양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있다사람들의 모든 말과 행동심지어 생각까지도 통제하는 세계 속에서윈스턴은 체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자각한다.

 


빅브라더와 당이 행하는 통제의 핵심에는 텔레비전 형태의 양방향 송수신장치와 곳곳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언급되는 수신기들이 있다당은 이런 도구들을 이용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감시하고당의 방침에 어긋나는 이들을 적발해 교화하거나 증발시킨다결국 당은 공포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 당은 사람들의 생각의 통제를 위해서 이중사고를 강조한다이중사고란 마음속에 두 개의 상반된 믿음을 동시에 보유하면서 그 둘 모두를 받아들이는 힘”(337)을 가리킨다어떤 사건과 현상에 관해 당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진실이라고 충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다증거가 무엇인지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 보다 중요한 건당에서 뭐라고 말하는가이다.

 

흥미로운 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이 끊임없이 과거를 조작하고 있다는 점이다사실 윈스턴이 하는 일은 당의 현재 발표와 모순되는 과거 기록들(신문이나 책 같은)을 찾아서 수정하는 일이었다이런 의미에서 역사에 대한 다양한 공격들모든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 것이기에 믿을 수 없다거나기존 역사를 고의적으로 뒤집는 식의 왜곡이나아예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식은 간단히 따라갈 일이 아니다.


감시와 기억(역사)의 수정과 함께 당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또 한 가지 최종적인 방법은 세뇌였다작품 속에서 결국 사고경찰들에게 잡혀 간 윈스턴은 일련의 고문과 세뇌작업을 경험한다그를 심문하는 오브라이언이라는 인물은 끊임없이 궤변을 반복하면서 고통을 가했고마지막에는 윈스턴의 사고 자체를 완전히 비워버리고 당의 새로운 사고를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이 과정이 꽤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 동안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감시와 사고의 통제그리고 세뇌라는 도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재자들이 시민들을 억압하는 데 사용하는 기제들이다소설을 읽으며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작가가 묘사한 일들은 단지 소설 속의 일만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으니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과거 군부독재에 의한 권위주의적 정부를 경험했던 역사가 있고바로 이웃한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독재국가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사상의 통제와 세뇌작업들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하나의 지역 자체를 수용소화 할 수 있는 거대한 나라와과거와 역사를 수정하기에 여념이 없는 또 다른 섬나라까지소설 속 이야기가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시민들을 통제하는 국가권력만이 아니라그렇게 체제에 순응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더 두려웠다가짜뉴스와 선동가들의 부추김에 불끈 달아올라서 광장으로 뛰어나오는 사람들도 두렵고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십대들처럼 행동하는 팬클럽화 된 정치인 지지자들도 두렵고부동산 가격만 올려주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표를 주겠다고 생각하는 열등한 인간들도 두렵고그저 여성이니까성적소수자니까흑인(혹은 백인)이니까 지지한다는 식의 단편적 사고도 두렵다.

 

어쩌면 이미 빅브라더의 계획은 실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이미 사방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르고의 판단에서 멀어진이중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까.



다양한 사람들에게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그런 게 명작이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일까강렬한 문장들이 읽는 내내(그리고 읽고 나서도두근거리게 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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