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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 : 시대 논평 ㅣ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21년 2월
평점 :
루이스는 영문학자다. 그 중에서도 중세 문학을 전공했고,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배경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오래 전 일이라고 그 효용성을 전혀 믿지 않는 케케묵은 이야기들이 살아나서, 오늘 우리에게 모종의 교훈과 지도가 될 때가 수두룩하다.
물론 이번 책에서도 루이스의 그런 ‘배경’들은 여전히 기능한다. 가장 첫 글인 ‘기사도의 필요성’에서는 중세 유럽에서 통용되던 기사도 정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꼭 직접적인 소재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많은 자리에서 예스러움과 역사 속 사건들에 관한 이해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이 때의 ‘지금’이란 루이스가 살았던 20세기 중반을 가리킨다.)
책에는 루이스 당대의 중요한 논점들이 소개되고, 이에 대한 루이스의 관점이 제시된다. 예를 들면 자주 등장하는 논점 중 하나는 ‘평등’이다. 정확히는 ‘평등주의’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루이스는 이 사고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그 한계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당시에는 ‘민주적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에도 평등주의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루이스는 이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그건 타락한 인간사회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정장치일 뿐이고, 정치적 영역을 벗어나서 힘을 쓰려고 한다면 더 많은 것이 망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반 세기가 더 지난 시대에 관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오늘에도 힘을 발휘한다.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이 금지된 곳에서는 사람들이 백만장자, 운동선수, 영화배우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는 그의 지적은 정말로 옳다. 대학과 관련한 교육 계획에 필요한 두 가지 고려사항―대학에서 요구하는 입학 기준에 근거한 교과과정을 만듦으로써, 대학에 가지 않을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대학의 연구 형태가 좌우되어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놈의 대입시험’ 때문에 여전히 온 나라가 들썩이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처방이 아닐까.
열아홉 개의 이야기마다 독자를 자극하는 지점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물론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지식, 혹은 글 사이에서 그것을 이해해 낼 수 있는 독해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작은 문턱을 넘으면 풍성한 통찰을 마주할 수 있으니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