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우리나라는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야당 정치인을 가택연금하고 도청하는 일이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이었다그보다 10여년 전 미국에서는 도청을 이유로 대통령까지 하야하는 일이 벌어졌건만정치적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여전히 수십 년째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독재정권의 부역자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애국이라고 정신승리를 계속하며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영화는 좌천된 도청팀원인 대권(정우)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오마주한 듯한 정치인 의식(오달수)의 옆집으로 이사가 도청하는 과정이 중심이 되는데그의 도청팀은 하나같이 어리숙해서 이야기가 지나치게 무겁게 흘러가지 않게 만든다도청을 하는 사람과 도청을 당하는 사람이 결국 이웃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분명 환타지이지만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은 충분히 든다.


     영화 속에서는 의식이 딸이 살해되는 아픔 속에서도 결국 대선에 출마해 당선이 되었지만우리의 실제 역사에서는 야권이 분열되며 다시 한 번 반란수괴 중 하나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씁쓸한 결과를 맞았었다.(물론 그 이전에도 박정희가 영구독재를 꿈꿀 정도로 이 나라 국민들은 그를 뽑아주고 또 뽑아주었지만.) 부끄러운 일이다역사는 꿈꾸는 것처럼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정치인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영화 자체는 정치 영화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하다뭐 사실 정치가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의식이 우유만 먹으면 배탈이 나면서도 매일 아침 우유를 시켜 먹는 장면이다


     의식과 꼭 같은 증상(아마도 유당분해효소가 없나보다)을 가진 대권이 그 이유를 묻자의식은 낙농업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마시면 자신의 동료들이 마시고그러면 더 많은 국민들이 우유를 마셔 그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한다무릇 정치 지도자라면 이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재보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 즈음유력한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당선되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장미빛 그림을 사람들의 눈앞에 그려주기 바쁘다과연 그 모든 일들을 일개 시장이그것도 절반의 임기 동안 다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지만 말이다. C. S. 루이스는 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비전을 사라고비전을 판다고 사방에서 난리입니다하지만 저는 하루하루 정당한 소득을 위해 일할 사람뇌물을 거절할 사람없는 사실을 지어 내지 않을 사람자기 일에 숙달한 사람이 아쉽습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일어나지 않은 그림이 아니라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 왔는지다내게 이익을 챙겨주고또는 내 이익을 위해 일할 수하들을 챙기는 조폭 두목 같은 것들이 아니라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꾼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었는지비전팔이를 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꾼들 가운데서우리는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가려낼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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