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개봉한, 이민자 혐오를 다룬 영화. 다만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라 가상의 미래를 통해 이방인 혐오의 민낯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영화 속 세상에서는 이민자들을 도시 외곽에 떨어뜨려 놓고, 자력으로 도시 중앙의 통신탑에 도착하면 영주권을 주는 ‘게임’이 합법화 된 세상이다. 이 과정에서 이민자들의 길을 막는 클럽들이 존재하고 이들에게는 게임에 참여한 이들을 죽여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무려 TV쇼로 제작되는 이 게임에 우연히 말려들어간 주인공 조(마티스 란드베어)는, 공격을 당하던 이민자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고로 클럽원들 중 하나를 죽이고 만다. 게임에 참여한 이민자들을 도와주면 그 역시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법 때문에 그 자신도 이민자들과 함께 달리게 된 조. 그를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감독은 이 과정에서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이들의 모습을 매우 한심하게 묘사한다. 사춘기 반항아들처럼 머리를 염색하고 자기만의 스웨그에 빠져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 깝죽대다가 조의 한 주먹을 맞고 쓰러져 그대로 죽은 조직원의 모습은 그 백미.
마스크 하나만 쓰면 갑자기 없던 용기도 어디서 솟아나는 건지 조직원들은 대부분 뭔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이 동네의 마스크에 관한 인식은 이런 것이었나 싶은 깨달음이 새삼 든다.(그래서 그렇게 마스크를 안 쓰고 뻗댔던 건가.)
이들은 혐오로 먹고 사는 종족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의 활동 대가로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얻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TV쇼의 인기인들이었고, 그들과 비슷하게 머리가 빈 사람들의 추종을 받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모든 것들에서 구역질이 느껴졌다. 우리 사회에도 이와 비슷하게 혐오로 먹고 사는 이종족들이 있지 않던가.
주제와는 별개로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주인공 캐릭터의 떨어지는 현실인식/대응 능력 때문이었는데, 영화 설정 상 이미 이런 게임이 TV쇼까지 방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뻔히 안 될 것은 ‘여자친구에게 연락하게 휴대폰 좀 달라’는 소리는 왜 그렇게 반복하는지.
게임에 참여한 이후에도 멍 때리며 서 있거나, 공격하는 상대에게도 시종일관 수동적으로 대응할 뿐인 그의 모습 역시 좀처럼 몰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여기에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최악으로 그려냈는데, 안 그래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작품이 이 결말 때문에 1점을 더 잃었다. 어떤 메시지도, 감동도, 심지어 드라마도 없는 허무한 결말.
수십 년 동안 세계화를 추진해 왔던 국제사회의 여러 나라들은, 2000년 대 들어서면서 금융위기와 분쟁으로 인한 난민사태, 그리고 최근의 전염병으로 인해 점점 고립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유럽인 아프리카에서의 이민자들은 물론,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면서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이 많이 일어났었다.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국가다. 1년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사례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여론도 굉장히 경직되게 반응한다. 중앙 정치계에서도 난민들에 대한 혐오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고, 온라인상에서는 아주 저열하고 끔찍한 발언들이 일상적으로 널려있다. ‘반 만년 이어 온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는 진작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내 삶이 각박해서인지 좀처럼 외부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의 이런 마음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과장되게 보여준다. 우리는 그저 외면했을 뿐이고, 욕설을 한 번 내뱉었을 뿐인데 하는 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물론 이민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간단하지 않은 문제가 어디 한둘인가. 갈수록 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이민자들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일 텐데, 이제는 조금씩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