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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저스틴 트리엣 감독, 비르지니 에피라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20년 10월
평점 :
아, 이렇게 주인공의 심리가 불안한 영화는 보기에도 쉽지 않다. 심리상담가인 주인공 시빌(버지니아 에피라)은 소설을 쓰기 위해 하던 일을 정리하기로 한다. 어느 날 밤에 걸려온 절박한 전화를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전화의 상대인 마고(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를 만나게 되는데 이게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도화선이 된다.
마고의 문제는 동료 남자 배우와의 사이에서 임신을 했으나, 그녀와 만나던 상대가 마침 영화의 여감독과 연애 중이라는.... 콩가루 관계 때문이다. 남자는 아이를 낳기 원하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신이 맡은 배역과 경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그런데 사실 시빌 역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상대는 떠나버렸고, 한 동안 알콜 중독이 될 정도로 술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남아있던 상처가 마고의 사례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
마고를 위해 영화 촬영지까지 따라가게 된 시빌.(물론 이건 마고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마고의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에 넣으려고 했던 것) 그러나 그곳에서 마고가 말한 상대 배우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결국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에 이른다. 간신히 덮어두었던 트라우마는 현실의 그녀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영화는 이런 마고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그녀의 심리에 공감하며 따라간다면 이야기에 몰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인물들 사이의 헝클어진 관계가 거슬린다면 좀처럼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내 경우는 이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중간 중간 보이는 나름의 유머코드도 피식 하는 웃음 이외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사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시빌이 경험한 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일이고. 시빌은 나름 AA모임(알콜중독자들의 회복을 위한 모임) 같은 데도 참여하는 등 노력을 다했던 것 같지만, 한계에 부닥쳤던 것 같다. 이유가 뭐였을까?
어쩌면 영화 속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뿐인 동생은 자신의 문제로 인해 허덕이고 있었고, 어린 자녀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료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보일 수 없었고. 결국 충동적인 사건들이 연속되면서 그녀는 조금씩 가라앉는다. 외로움은 생각보다 위험한 요소다.(아, 나 위험한가?)
맨 처음에 썼듯이 이렇게 주인공의 심리가 불안한 영화는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공감을 위해서 애써야 하는데 굳이 영화를 보며 그렇게 내 기분을 다운시킬 필요까지는 느껴지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