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서른에게 - 제 12회 오사카 아시안 필름페스티벌 관객상 수상
팽수혜 감독, 주수나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꽤 전도유망한 커리어우먼인 주인공 임약군(주수나)은 이제 얼마 후 서른 살을 앞두고 있다. 회사에서의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일하지만, 어딘가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물이 새는 셋집은 그 전조였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삐걱댄 지 한참 된 듯했다(둘은 대화할 때 좀처럼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이상으로 여기던 회사의 여성 CEO의 삶에서도 왠지 모를 공허감이 느껴진다.
영화는 이 공허함과 ‘서른 살’이라는 나이를 연결시키려고 하는 듯하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20대의 패기가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서 조금씩 현실화 되는 시기일까. 너무 한참 전에 이 전환을 지나버려서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 경우엔 30대로의 전환보다 20대로의 전환이 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맞이하는 20대 대학생 시절과, 그저 맡은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어느 새 맞이한 30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확실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기는 하다.
영화 속 주인공 임약군의 삶에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났던 계기는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이었다. 급히 몇 다리를 거친 소개로,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황천락(정흔의)이라는 여성이 집을 비운 동안 그녀의 집에서 머물기로 한 그녀는, 천락이 남겨둔 다이어리를 읽으며 그녀의 삶에 대해 알아간다.(아, 이건 천락이 보라고 남겨둔 것이었다)
같은 날에 태어난 전혀 다른 여성의 삶. 그녀는 뚱뚱한 체형에 그리 예쁜 얼굴도 아니었지만, 항상 웃으려고 노력한다. 아니 노력만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로 삶을 그렇게 즐기고 있다. 30여 년을 살면서 어디 즐겁고 좋은 일만 있었을까. 심지어 지금 그녀가 집을 비우고 오랫동안 꿈꿔온 파리 여행을 홀로 떠난 결정적인 계기까지 알게 되면...
삶을 보는 관점의 변화는 다양한 계기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가장 흔한 계기는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던지, 나와는 다른 사람의 삶을 깊이 있게 보게 된다든지 하는, 내 시야 이외의 관점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일들이다. 그런 식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현실의 문제에 치여 점점 좁아지게 된다.
물론 서른 즈음이 그리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닐 게다. 좀 더 많은 ‘서른 즈음’에 있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꼭 서른 즈음에만 변화의 순간이 찾아오겠는가? 물론 영화 속 두 명의 여성처럼 ‘자유로운’ 상황에 있지 않다면 쉽게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사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부족하기 보다는 결단할 수 있는 의지의 부족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변화라는 게 어디 그 자체로 좋은 것일까.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하는 건 그 변화가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일 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두 여성은 조금은 다르지만 저마다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은 것 같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엉뚱한 곳에 던져버리기도 하는 요즘이니.
변화의 선택을 앞둔 사람들이 한 번쯤 볼만한 영화. 두 여성의 선택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