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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ㅣ 서해클래식 4
토머스 모어 지음, 나종일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평점 :
과연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뜻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이야기가 쓰인 16세기 당시의 판단으로, 여러 분야의 가장 좋은 모습을 떠올려 콜라주처럼 모아놓은 세계가 유토피아다. 하지만 각각의 영역만 생각하면 이게 좋겠다 싶어도, 그것들이 여러 개 복잡하게 결합되면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는 게 세상이다. 때문에 이야기를 한참 읽다 보면 ‘정말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애초에 이야기가 어떤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16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다양한 문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기 위함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아귀가 좀 헐거운 부분들을 지적하며 골라내는 대신, 나름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다. 영국에서 고위공직생활을 했던 작가 토머스 모어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점만 해도 작가를 인정할 만하다. 원래 특권에 익숙해지면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책은 분명 작가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가상의 나라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당대 유럽의 상황을 반어법적으로 담아내는, 일종의 역사책처럼 읽히기도 한다. 왕과 귀족, 성직자들의 부를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빈민의 처지에 몰려 매일 중노동을 하는 상황, 그마저 일자리가 없어 결국 도둑이나 걸인으로 전락해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게 강한 처벌로 억누르기만 하는 당국자들. 물질주의에 물들어 부를 쌓는 데 여념이 없는 권력자들과, 그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지는 법률 등.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은 하루 여섯 시간만 일하고, 그러면서도 모두가 다 노동에 참여하기에 생필품에 부족함이 없고, 금을 노예를 묶어두거나 죄인을 표시할 때 사용함으로써 금을 귀하지 않게 여기려 한다는 장면은, 일부러 쇠로 화폐를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지니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고대 스파르타에서 추진되었다는 리쿠르고스의 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곳곳에 피식 웃게 만드는 문장들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게 진짜 보석인지 감정서를 써주지 않으면 사지도 않을 정도로,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냥 모조품을 지니고 있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지적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통렬하게 때린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인사해주는 높은 지위에 오른다고, 삐걱거리는 내 무릎이 낫는 것도 아니고, 돈 머리가 치료되는 것도 아니니 무슨 소용이냐는 표현도 꼭 누구를 가리키며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유토피아적'이다. 그건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과 그 결과로 다시 한 번 형성되고 있는 특권계급도, 이제 자연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빈부의 엄청난 격차도, 극심한 물질주의로 인해 희생되어 가는 사람들의 뉴스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문제는 물질주의에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두가 계획적으로 함께 일하고 소득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해결책은 언뜻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앞서도 썼지만, 이 책이 구체적인 사회구조 개혁을 위해 쓴 것은 아니기에, 빠진 부분도 많고(예를 들면 장애인이나 노인처럼 생산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생활할까, 그리 솜씨가 좋지 못한 작가나 시인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온전한 그림을 다 그리기는 쉽지 않지만, 문제인식 자체에는 공감이 된다.
오늘도 수많은 "유토피아"들이 쓰이고 있다. 저마다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지만, 여전히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건,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지가 부족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