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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할 권리
M. 스캇 펙 지음, 조종상 옮김 / 율리시즈 / 2018년 4월
평점 :
최근 생명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형제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벌써 오래된 일이고,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촉발된 논쟁도 작은 문제는 아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안락사일 것이다. 서양의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허용되기도 했던 안락사 혹은 조력자살은, 갈수록 고령화 되고 있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스캇 펙은 이 주제와 관련해서 오래 전부터 많은 고민을 하며 책을 써왔다. 꽤 오래 전 『영혼의 부정』이라는 책에서 아주 좋은 통찰을 얻었던 적이 있었는데, 새로운 책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구입했다. 그런데 아뿔싸, 원제를 보니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의 영어제목이 “Denial of the Soul”, 즉 영혼의 부정이었다. 애초의 제목이 영어제목을 직역한 것이라면, 새로 낸 이 책은 그게 좀 어렵다고 느꼈는지 새로운 제목을 붙였는데, 사실 책의 내용을 다 읽고 보면 이 또한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긴 한다.
저자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의 근거로 제시하는 ‘삶의 질’ 문제가 안락사를 시행하는 이유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오늘날 많은 (마약성) 진통제는 충분히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중독의 위험을 과장해 처방과 투약을 늦추거나 주저하는 의료계의 관행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2장과 3장에서 저자는 육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도 적극적으로 진통제를 사용한 완화치료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외부생명유지장치와 같은 과도한 의료조치로 수명을 억지로 연장시키는 의료적 관행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치유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저자는 여기에 ‘플러그를 뽑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얼핏 모순되는 것 같지만, 저자의 입장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의 환자가 겪는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의 제한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보인다.
요컨대 저자는 안락사를 피할 가장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로 미뤄두고자 한다. 심지어 고통(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도 안락사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통은 우리에게 인생에 관해 뭔가를 배울 수 있게 만드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해는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데, 인간 정체성의 핵심으로서의 영혼을 강조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혼을 성숙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에 따르면 성급한 안락사는 이러한 성숙을 도리어 방해한다.
십수 년 전 읽었을 때보다 조금 더 저자의 주장이 선명하게 와 닿는다. 아마도 그 기간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년 동안 집중치료실과 일반병실, 그리고 집 사이를 오고가시며 앓으시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입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와 가족 모두 쇠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병실이 몇 개인지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종합병원에서도 막상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수두룩하다는 걸 깨달으면 허탈해진다.
생각해 보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그런 곳에 며칠을 머물면 정신착란이 일어난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몇 번이나 연속해서 고비를 넘던 중, 병원에서 다시 한 번 위험한 상태가 되었을 때 소생술을 실시할지 여부를 가족에게 물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대신해 내가 결정을 내렸다. 의식도 없이 누워계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말했던 ‘플러그를 뽑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고통은 자연스럽게 인생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배움의 양이 많든 적든, 사람은 그런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대해, 또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듯하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이라는 문에 도착할 수밖에 없고, 저자처럼(그리고 나처럼)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태로 그 문 앞에 서게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그 문을 열려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해 보이긴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너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고통은 누구와도 직접 나눌 수 없는 것이니까. 저자의 말처럼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충분한 의료적, 약물적 처치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제공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막바지를 찬찬히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내가 그런 상태가 되어 입원한다면, 꼭 진통제 자기조절장치를 제공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관련 주제를 함께 읽고 이야기 해 보기 좋은 책이다.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여러 견해와 주장들을 무조건 신봉할 필요는 없지만, 확실히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