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바보들 세트 - 전2권 -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에서 못다 한 말들 노무현과 바보들
(주)바보들 엮음, 손현욱 기획 / 싱긋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명의 영화를 먼저 봤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했던 인터뷰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영화는 아무래도 적당한 상영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여러 가지 잘라낸 내용들이 있었을 테고, 내용의 양으로만 보면 책 쪽이 훨씬 더 상세하다. 덕분에 두 권의 두툼한 책이 되었다.

 

     ​하지만 단지 영화가 책으로 형태만 변한 건 아니다. 영화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느낌이 좀 강했다면, 책은 노사모 회원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덕분에 책을 다 보고 나면 잘 알지 못했던 노사모 내부를 살짝 엿본 듯한 느낌이 든다.

 

 

     ​노사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다. ‘팬클럽이라는 단어가 이 단체의 성격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들은 어떤 정치적인 목표를 가지고 모인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던 이들 역시 조직이나 운동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범한 시민들이었고.

 

     ​때문에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실수도 했지만, 기존의 조직이라면 할 수 없었을 일들도 이뤄낼 수 있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데에는 이들의 목소리와 활동이 분명 한 몫을 했다는 걸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아마추어리즘이 그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하는 데 한 몫을 했다는 죄책감을 초기부터 활동했던 회원들은 모두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을 만들기만 하면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알아서 잘 풀릴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노사모를 노무현으로부터 한 발 떨어지게 했고, 그 틈을 비열한 이들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러나 영화평에도 썼듯이, 우리는 노무현을 영웅이나 성인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권위의식과 거리가 멀었던 그라면 더더욱 바라지도 않는 일일 것이다. 그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과 지난 태도에 대한 후회를 디딤돌 삼아,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힘을 모으면 되는 거니까.

 

 

     ​편으로 소위 문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종종 보여주는 이상행동도 어쩌면 노무현에 대한 상실감, 죄책감에서 비롯된 보상적 과잉행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자주, 아니 거의 상시적인 이상과잉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란, 물론 예외도 있지만, 대개 옳음과 그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가의 다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쪽을 무조건 옳다고 우기는 것도 정치발전에는 완전히 부합되는 일은 아닐 것 같다.(물론 저쪽이 워낙에 질이 떨어지니 반작용이라는 걸 안다)

 

     ​대선 이후,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노사모는 길을 잃은 것 같다. 진작 해체에 관한 논의가 나왔다가 투표를 통해 부결된 후에도, 이전과 같은 동력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불꽃놀이가 끝난 후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누구는 폭죽을 좀 더 사러가고, 누구는 식당으로, 숙소로 돌아가고...

 

     ​개인적으로는 팬클럽답게 깔끔하게 해체하는 것도 좋았겠다 싶지만, 뭐 외부인이 할 말은 아닐 테고. 어쩌면 팬클럽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게 두는 걸로 해체에 이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제 노무현재단이 있어서 그쪽으로 좀 더 무게감이 많이 옮겨졌기도 했고...

 

  

     엮으면서 나름 편집에 신경을 쓴 것 같긴 하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고, 사람마다 생각도 조금씩 달라서 어떤 일관된 메시지가 강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노사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는 있었겠지만.

 

     아울러 책을 정말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표지부터가 한 번 더 열리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노란색 띠지에 박혀 있는 문구는 감동적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내용인데, 두 권의 책을 감싸는 겉장은 반이 접혀져 있었고, 그걸 펴면 노 전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문이 오래된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조선 왕조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고 시작하는 그 연설. 새삼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썼구나 싶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나름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긴 노사모라는 단체가 조금씩 희미해지는 과정에서 이런 책이 한 권쯤 나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