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셀렉션 시리즈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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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 이론가가 쓴 불평등에 관한 고발서다. 책은 우선 이제는 익히 알려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세계적 빈부격차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1960년에는 최고경영자와 일반 노동자 사이의 보수차이가 12배였던 것이, 1974년에는 35배로, 다시 1980년에는 84, 1999년에는 400, 1년 후인 2000년에는 531배로 늘어났다는 것.

 

     ​이런 수치들만 보면 강렬한 분노혹은 박탈감같은 것이 들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런 수치 자체가 일종의 주장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불평등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보수가 다르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그 과정에 있어서 불법적인 행위가 있지 않는 이상, 하는 일이 다른 두 사람이 다른 보수를 받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은 충분하지 않다

 

     ​부유층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부를 가져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사회의 전체적 부가 계속 증가해서 나머지 사람들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자원과 부는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나머지 계층의 예상소득을 잠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불공정함이나, 지나치게 많은 것을 빼앗겨서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빈곤상태이다.

 

 

     ​사실 이런 현실 자체는 익히 알려져 있었던 것이고, 보다 관심이 있었던 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라는 부분이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 퍼져있다고 말한다. 크게 네 가지로 경제성장 지상주의’, 이와 관련해 소비의 영구적 증가에 대한 찬양’, ‘불평등의 필연성’, ‘(자유주의적) 경쟁의 무조건적 옹호가 그것.

 

     저자는 이들 주제들에 관해 단지 경제지표에 근거한 주장만을 펴는 것이 아니라(그랬다면 피케티의 책이 좀 더 알차다), 일종의 철학적 분석까지 시도한다. 이 점이 책을 조 더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 특히 두 번째 전제인 늘어나는 소비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소비지상주의와 사랑을 엮어서 풀어내는데, 단순히 무한대의 소비가 어렵다고 지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안락함, 편안함에 관한 선호가 사랑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지적한다.(이와 비슷한 내용을 현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본 것도 같다)

 

     ‘불평등이 원래부터 자연스럽지 않다고 주장하는 세 번째 부분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 저자는 일부 특권층, 혹은 엘리트층이 위에 올라서는 것은 적절한 일이라는 통념을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분히 여기엔 실제로 그들이 특별하지도, 그 자리에 있을 자질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듯하다. 그런데 어떤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역사시대 이래로,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왔던 방식은 절대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든지) 사회적 계층(혹은 지위의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순전히 역사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말이다)

 

     물론 이 말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노예나 농노(저자가 인용하는 예다)로 부리거나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더라도 우리는 이미 과거의 그런 관념이 잘못된 사실(특정 인종은 열등하다는 식의)에 근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런 사회적 평등의 필요와 가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적(재산, 소득 등의) 평등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경쟁의 옹호를 소비주의의 확산과 연결 짓는 네 번째 부분도 재미있다. 저자는 데카르트까지 인용하면서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잠재적 소비대상으로만 여겨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적 유대마저 약화시키는 이런 상황은 극복되어야 할 부분임에 분명하다.

 

 

      전반적으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항목별로 글의 성격이나 특성도 편차가 있고, 지금은 다른 책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분명 군데군데 번뜩이는 통찰들이 보인다. 다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불평등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좀 불분명하고, 저자가 바라는 이상적 모습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피라미드 구조가 문제니 그걸 거꾸로 세우면 된다는 말인지, 모든 산을 허물고 호수를 메워 전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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