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감상평 。。。。。。。
타노스의 인피니트 스톤 사용으로 인류의 절반이 사라는 사건이 발생한 지 수년 후, 남은 이들은 극심한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여기에서 갑자기 등장한(돌아온) 앤트맨. 과거 단독영화(앤트맨과 와스프) 말미에 살짝 등장했던 양자 얽힘 현상으로 인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들고 나와 문제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던진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미 이런저런 경로로 예측되었던 내용이다)
그 작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 남은 히어로들. 타노스보다 먼저 스톤을 모아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싸움에 나선다.

2. 감상평 。。。。 。。。
영화의 시작부분은 처참하다. 야구장은 버려졌고,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멈춘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었던 것은 영화가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인구의 절반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당장 경제적으로 엄청난 후퇴가 일어남에도) 그들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고 보존하려고 애쓴다.(여기에 또 얼마나 많은 행정력이 들어갔을까)
어쩌면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명일지도 모르겠다.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가 만들어지고, 건국 후 이스라엘에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그들을 도운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야드바쉠’이 세워졌던 것처럼, 영화 속 생존자들은 공원을 만들고 수백 개의 기념석을 세운다.
잊어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큰 사고나 고통, 상처를 치료하면서 상처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달려가려고 한다. 이건 신체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에도 마찬가지여서, 생존자들에게 끊임없이 ‘잊으라’고 강요하기까지 한다. 한 구석의 추모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마저 조롱받는 게 현실이다. 과연 그렇게 상처를 덮고, 잊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일일까?
영화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제법 중요하게 다룬다. 타노스는 인류의 절반을 날려버렸지만, 여전히 남은 절반은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이 기억을 하고 있는 한, 타노스가 원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망각이 아닌 기억이 죽음으로부터(‘타노스’라는 이름과 그가 행한 일은 그리스어로 죽음을 뜻하는 ‘타나토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을 지탱시켜준다. 남은 이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싸울 수 있었고, 그 기억은 포기의 순간을 넘길 수 있는 힘이 된다.

모든 것을 지우려는 이와 기억하려는 이들 사이의 싸움은 결국 기억하는 이들의 승리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도 있었지만(이 역시 매우 중요한 전통적 주제다), 그들 역시 남은 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사실 뭔가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일은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없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일이 일어나려면, 타노스의 한탄처럼, 정말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야 할 것이고. 망각을 강요하는 이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지워버려야 하는 딜레마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억지로 지우려 하기 보다는, 잘 기억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영화 자체는 살짝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전편에서 벌여놓은 판이 썩 자연스럽게 수습되지 못한 느낌이다), 시리즈 자체로도 한 세대의 은퇴를 기억하는 괜찮은 의미가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