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이미지 - 중세 세계관과 문학에 관하여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비아토르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중세 영문학의 전문적인 연구자였던 C. S. 루이스가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우주모형(일종의 세계관)이 어떤 구조로 세워졌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풀어간 책이다

 

      루이스에 따르면 중세는 여러 권위들이 공존하는 시대였다(30). 그들은 그 권위를 지닌 존재들을 그에 걸맞은 위치에 배치시키려고 노력했던 조직가들이었다(36). 이 작업의 근거는 앞선 세대가 낳은 책들이었다. 그들은 책의 권위를 무엇보다 강하게 인정했던 사람들이었고, 책이라면 그것이 시든, 역시책이든, 논문이든 가리지 않았고,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37-38). 이런 특징은 중세 문학 특유의 혼합적 성격을 만들어 낸다. 중세의 우주 모형은 단지 기독교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교적이기도 하다

 

      중세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총체적 관점에서 안도와 만족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여러 작품들에서 그런 우주모형을 인용하고 변주를 주며 즐겼다. 그들은 (현대인들처럼) 엄청난 암흑 속 진주처럼 박혀 있는 지구와 인류를 떠올리는 대신, 반대로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세계를 떠올렸기 때문이다(166). 우리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그들과 꼭 같은 작품들을 남기지 않았겠는가?(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현대의 책들을 보면 이미 그러고 있는지도)

 

      루이스는 중세인들의 작품은 그들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그것을 통해 중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295). 비록 그들의 주장이 상상과 (잘못된) 추론에 기인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들의 우주 모형이 오늘날 우리의 것과 같지 않다고 해서 오류가 진리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만 보며 과거의 모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실 모든 우주 모형은 그 시대에 알려진 현상들을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려는 노력이니까.(오늘날의 모델도 우리의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2. 감상평 。。。。。。。

     고전 문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루이스인 만큼, 이 책에서 인용하는 출처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단테와 초서 같은 잘 알려진 저자들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비전공자라면 처음 들어봤을 만한 저자들을 망라한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그런 모르는 저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글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늘 가던 익숙한 곳을 넘어, 아주 새로운 광경을 보는 것에 있지 않던가. 책을 여행지로 본다면 이 또한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일 거다. 이런 점에서, 폐기된 이미지는 우리가 오래되어서 더 이상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고대 유적지를 탐방할 때 느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것이다.

 

     앞서 정리해 둔, 이 책의 전반적인 전개와 주제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중세 사람들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예컨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중세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그린 지도와 작품에 쓰인 표현이 그런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건 당대의 지도제작기기술과 표현양식의 부족 탓이지 실제로 그런 지도처럼 세상이 생겼다고 여겼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중세의 지리는 많은 부분이 로망스적인 것에 그칩니다“, 211).

     중세 텍스트의 장르를 구분하는 방식이 오늘날의 것과는 사뭇 다르며, 달 너머 세계니, 원동천이니 하는 중세 특유의 우주론도 흥미롭다. 여기에 중세 예술의 겸손한 특성까지 이르면 루이스가 중세의 다양한 문헌들을 가지고 하나의, 공연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짝짝짝

 

     예전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 방대한 배경지식에 감탄했었는데, 루이스의 이 작품 역시 그 못지않은 지식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홍성사에서 펴낸 기독교를 주제로 한 책들과 성격은 좀 다르지만, 내 루이스 컬렉션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만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