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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노트
마미 스나다 감독, 도모아키 스나다 출연, 마미 스나다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회사원으로 평생 일해왔던 스나다 도모아키. 드디어 은퇴를 하고 그동안 제대로 챙기지 못한 가족들과 인생을 보내려던 찰나, 덜컥 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4기.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도모아키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엔딩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가고 있으니 ‘버킷 리스트’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는 그에게 히말라야나 스카이다이빙 같은 건 어불성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계획들을 해 나가던 차, 그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입원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인 스나다의 막내딸이 직접 촬영과 내레이션, 감독을 맡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러니까 영화 속 스나다씨는 실제로 병을 앓고, 죽어가고 있었다.

2. 감상평 。。。。。。。
자신의 아버지가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죽음에 다가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했던 딸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참고로 딸은 각본 등으로 계속 영화계에 머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철이 없다고 뭐라 할지도 모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래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나왔다고 인정할지도 모른다.
사실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많은 작품들의 소재였으니까 아주 새로운 면은 찾기 어렵다. 보통 그런 영상들은 밝음과 어둠 중간의 어디선가에 서서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스스로 혼란을 겪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이 영상 속 스나다씨는 꽤나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해 나간다. 감정의 과잉(물론 때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1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3년여의 투병생활을 거치셨기에, 조금씩 쇠약해져 가시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꼭 영화 속처럼 점차 살이 빠지고, 기운이 사라지고, 그러다 스스로는 팔 하나도 가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몇 번인가 의식을 잃어버리고, 때로 환각에 빠지기도 하고,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날을 보내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모두 마칠 때까지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장남이기도 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누군가는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도 여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과정을 마치고, 몇 년이나 흐른 뒤에 문득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펑펑 울었다. 사실 아버지는 그 나이 대의 세대들이 대개 그렇든 딱히 살가운 편도 아니셨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분도 아니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한은 아버지와 10분 이상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깊은 슬픔의 이유였다. 나는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가장 가까운 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분의 개인사에 대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떻게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타향에 정착해 일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즐거워했고, 무엇을 무서워했는지, 정말 아는 게 없었다. 무슨 위대한 일을 하신 분은 아니었더라도, 나름의 찬란한 한 세월을 보내셨던 분이 그렇게 완전히 잊힌 버린 것이다. 그래서 꿈속에서 겨우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분에 관한 아무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한 채 내 기억 속의 그분의 모습만이 재구성되었을 때, 가슴이 찌릿해졌다.

모든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멋진 작품일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늘 그렇듯 기적적인 일이고, 그런 세월이 오랫동안 쌓였다면, 누구의 이야기에나 한 가닥 명장면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꼭 대중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래서 스나다씨의 남은 삶을, 그리고 지난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그의 딸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옳았다. 비록 황금처럼 번쩍이지는 않더라도, 경제성이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만 두고 보면, 반짝이는 작은 조약돌들도 모이면 그 못지않게 아름답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