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만찬 1
하비에르 시에라 지음, 박지영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그와 더불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이

실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점 역시 깨닫게 될 거요.

마지막 하나, 진실은 전혀 뜻밖의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오.

 

 

 요약                                                                                                

 

        또 ‘제 2의 움베르토 에코’님이 나오셨단다. 책 겉장에 삽입되어 있는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찍은 사진(하필 이렇게 나온 사진을 실은 이유가 뭔지..)을 보니 저자에 대한 기대감이 반으로 확 준다. ㅡㅡ;;


 

 

        저자는 이번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어디서 많이 봤던 설정이다. 달라진 점은 이번 이야기에서 레오나르도는 시온 수도회의 수장이 아닌 카타리파의 핵심요인으로 나온다는 것.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바로 이 ‘카타리파’이다.

 

        아무튼 레오나르도는 이 카타리파의 일원으로, 자신이 맡은 작품들에 카타리파의 비밀 교리들을 상징을 사용해 숨겨 놓았고, 누군가 이 사실을 알고서는 아고레로라는 가명으로 로마 교황청에 레오나르도의 작업을 막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 사건을 맡아 밀라노로 파견된 종교재판부의 레이레 신부. 레이레는 그 곳에서 아고레로가 누구인지, 그가 경고하고 있는 일의 진상이 무엇인지 수사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수사는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았고, 실마리는 레이레 신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 상징.


 

 



↑ 이게 문제의 저자 사진..;;


 

 

 감상평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나로서도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문제는 소설이 사실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 말미에 번역자의 입으로 이 책은 80:20의 비율로 사실과 상상이 섞여 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니, 책의 내용에 담긴 특성상 나도 어쩔 수 없이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을 지적하는 ‘변증적’ 성격의 약간은 지루해질 지도 모르는 감상평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먼저 소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카타르 파’에 대해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책에는 ‘카타르파’로 번역되어 있는 이 이름은 아마도 영어의 Cathars를 음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신학서들에서는 모두 라틴어 Catari를 음역한 카타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아마도 그 당시 그들을 언급한 문서들이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가능한 현장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다면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카타르’보다는 ‘카타리’라고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예를 들어,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를 영어식 발음인 시세로로 읽겠다고 우긴다면야 뭐 할 말은 없지만, 키케로 자신은 자기를 부르는 지 못 알아듣지 않았을까?)

 

        책에도 약간 실려 있는 것처럼, 카타리파는 중세에 등장했던 이단 종파 중 하나이다. 사실 카타리파의 성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듯 하다.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의 다른 모습이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학자들은 단지 기독교적 외형장식만을 차용한 ‘전혀 다른 종교’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카타리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엄격한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세상은 선과 악의 전쟁터이며, 영적인 것은 선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므로, 사악한 물질세계에서 선한 영혼의 세계로 탈출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런 교리적 문제 때문에, 비록 그들의 조직이나 행동들이 수도원적 생활이나 가난하지만 진실된 설교자들과 비슷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일찍부터 이단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보다는 바빌로니아의 종교인 마니교와 더 유사해 보인다.


 

 

        이 정도의 선지식을 가지고 책을 들여다보면, 저자는 책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배경부(당시의 종교적 분위기나 특정한 건물, 인물 등에 대한 묘사 중 일부)를 빼고는, 이야기의 스토리를 이루는 중요한 고리들의 대부분은 상상에 의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나마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오류를 보이는 부분이 많다. 1권 96쪽의 주에 실려 있는 내용은 ‘영지주의(그노시즘)’이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자’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노시즘은 그리스어의 ‘지식’이라는 어휘인 ‘그노시스’에서 온 말로,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만이 진짜 지식을 가졌고, 그 지식이 있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빈정대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비밀스런 지식~’ 어쩌구 하는 존칭의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또, 저자는 카타리파를 그노시즘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다시 그노시즘을 플라톤 사상과 동일하게 보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사상적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없다. 그저 비슷해 보이면 다 연결지으려는 진화론적 사고방식의 오류이다. 숟가락과 삽이 비슷하다고 해서 숟가락이 발전해 삽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99쪽에 나온 것처럼 ‘고태 카타리 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카타리파가 상징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2권 124) 저자의 설명에 대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교회의 신학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 예컨대 성경이 교회에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을 신의 계율을 어긴 일이라고 말한다고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며 주장하는 것(2권 137)은 저자의 편견이 반영된 설명일 뿐이고, 소설에 나오는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가 ‘위험한 신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2권 181)은 ‘신학적 가치’라는 말에 대한 저자의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그 함마디 문서’가 사해사본보다 중요하다는 저자의 확신(2권 277)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도 나그 함마디 문서의 기록시기를 3, 4세기에 가깝게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초기 교회의 문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쯤 해서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책에는 자주 ‘고도의 지적 게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책이 끝날 때 까지 나는 도대체 그 ‘고도의 지적 게임’이 어디에 등장하는 지 발견하지 못했다. 문자에 숫자를 대입해서 원하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케케묵은 수법이나(사실 오늘날에는 컴퓨터의 발달로 원하는 모든 단어를 이런 식으로 조합할 수 있다), 말하지 못하는 그림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을 (‘상징’이라는 멋들어진 방식을 통해) 이끌어내는 수법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것으로, 이런 방식들은 말 그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내용 밖에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이 치밀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갈 것이라는 기대는 종반부로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만다. 책에는 특별히 ‘사건의 진행’이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의 설정대로 이야기의 끝까지 거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많지만, 그들 모두가 사건에 충분히 개입되지는 못하고 있고, 내용의 진행과 함께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은 매우 적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라면, 이내 질려버리고 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부에 아고레로가 누구인지 찍었는데,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이 책을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중간쯤으로 소개하는 건 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인물들이 중세에 살고 있다는 점을 빼면 ‘장미의 이름’과 닮은 점이 별로 없고, 교회를 뒤집을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의 발견이라는 허풍을 뺀다면 ‘다빈치 코드’와도 비슷한 점이 적다. 오히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의 아류작쯤으로 보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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