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 교회가 신앙을 지켜온 치열한 역사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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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오늘날 이단에 대한 감상적 관점이 역사적 사실(근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다음 문장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개방적이고 느긋하고 성적 중립을 지키는 관대한 이단과 편협하고 독단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정통을 서로 대비시키는 일은 역사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접근법은 오늘날의 문화에 맞춘 산뜻하고 매력적인 대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와는 양립할 수 없는 접근 방식이다.”(125)

  

      우선 초대 교회는 정통에 반대하는 이들을 제거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3세기 초까지 기독교회는 지속적으로 당국의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 고전적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에비온주의, 도세티즘(가현설), 영지주의, 발렌티누스주의, 마르키온주의 등은 적어도 권력에 의해 제거된 자유운동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단을 배제하는 움직임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단이 교회의 권위나 구조에 제기하는 도전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미래에 주는 의미 때문”(134)이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교회의 다수파(정통파)는 이단의 주장을 따를 경우 장기적으로 기독교가 가진 독특함을 상실하고 결국 소멸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고,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세에 이르면, 신앙이나 교리보다는 교회와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좀 다른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160).

 

     책 후반에는 이단이라는 집단을 만들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지종교학이라는 연구를 통해 추적해 본다. 크게 다섯 가지로, 문화적 규범(기독교를 당대의 문화에 어울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합리적 규범(기독교의 특정 교리가 비논리적이라고 여겨질 때 이를 합리화시키려는 의도), 사회적 정체성(특정한 이단교리가 일부 사람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현상), 종교적 타협(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위해 교리의 일부분을 완화시키는 것), 윤리적 관심(‘정통파가 특정한 윤리적 규범에 적절한 대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에 대한 자체적인 답변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그것.

     여기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관계설정에 관한 짧은 논의들이 덧붙여지는데, 이 부분도 나름 흥미롭다.

 

  

2. 감상평 。。。。。。。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와 이단과의 투쟁,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이단이라는 존재는 큰 영향을 끼쳤다. 그건 교회가 교리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드는 데 자극을 주었고,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물론 로마가 기독교화 된 이후, 그러니까 박해가 사라진 후의 이단 논쟁은 분열을 조장하거나(아리우스 논쟁) 투쟁에 참가한 이들의 개인적인 적대감이 반영된 경우(네스토리우스 논쟁)도 없지는 않다. 특히 고대 후기의 몇 차례 공의회에서는 매번 같은 주제(단성론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단 논쟁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단순히 억압적 권력에 의해 제거된 힘없는 자유주의자들이라는 그림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바로 이 부분을 밝혀내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기독교 내의 권력 관계, 그리고 실제 이단들의 성향은 현대의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이 그리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이단과의 투쟁 가운데서 정통교리에 대한 의식이 싹트고 정립되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유익이다. 저자는 이 때 정통교리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만약 그랬다면 이단에 대한 배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기독교 사상과 예배 가운데 내재해 있었다’(45)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세우기 위해 교리를 발전시켰다는 것(48).

 

     이 책의 장점은 정말로 있었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고대의 주장과 현대의 주장이 섞여 시대착오적인 결론을 내는 이들이 빠진 함정을 피하기 위해, 실제로 있었음직한 사건들을 역사적 연구를 통해 재구성해 낸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이단의 본질, 혹은 이단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들이 처음부터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악한 목적을 갖고 나온 이상한 집단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부분이다. (이 점은 현대의, 특히 우리나라의 여러 교주들과는 사뭇 다른 부분) 초기 기독교회 안에서이단은 발생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를 좀 더 나은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이 의도면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연구를 마치고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교회가 단순히 지적으로, 영적으로 정통에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서는 충분치 않다는 것. 정통이 갖는 강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다면 얼마든지 또 다른 데서 그와 비슷한 상상력을 제시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상상력이 결여된 의식만큼 따분하고 지루한 것도 없다(각종 기념식의 일반적인 축사 시간을 떠올려 보라). 정통이 진짜 기독교라면, 그건 따분해서는 안 된다. 그 메시지와 형식 모두가 세상을 뒤집었던 복음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일은 초기 기독교 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부를 단속하기 보다는 그 중심을 제대로 강조해 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홍병룡 선생님의 훌륭한 번역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지만,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이름을 당대에 사용하던 라틴어나 그리스식으로 표기하면서도, 일부(예컨대 순교자 저스틴유스티누스혹은 유스티노스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에서는 영어식 표기가 등장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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