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
작가가 되고 싶었던 종수(유아인)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물류회사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어린 시절 한 동네에 살았던 해미(전종서)를 만났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호감을 갖게 된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해미 대신 그의 집에 가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을 하기로 한 종수. 그리고 얼마 후 귀국한 그녀는 벤(스티븐 연)이라는 이름의 ‘오빠’와 함께 돌아왔다.
공항에서 셋이 만난 첫 순간 느껴지는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묘한 감정. 딱히 하는 일도 없었지만, 포르쉐를 타고,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파스타를 요리하고, 낮에는 카페에서 책을 보는 벤은 종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 영화는 이후 한 동안 종수가 느끼는 그런 묘한 감정을 중심으로 셋의 부자연스러운 동행을 그리다가, 해미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해미를 찾아 나서는 종수. 그의 눈에 처음부터 수상하게만 보였던 벤만 들어온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시작하니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만 하고... 마침내 파국을 맞는다.

2. 감상평 。。。。 。。。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발목이 잡혀 버둥거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작가지망생인 종수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긴 했지만 아직 무엇을 써야 할지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분노조절장애로 사고를 치고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 파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좁은 빌라 원룸에 살고 있는 해미는 아마도 카드빚에 허덕이고 있는 것 같다.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어지고, 이벤트 걸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동료’라고 부르기에는 뭐한, 외로운 상황.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가진 돈을 다 털어 멀리 아프리카 사막에까지 다녀오지만, 그녀의 결론은 노을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그런 이들 옆에 전혀 새로운 캐릭터가 나타났다. 딱히 하는 일도 없어 보이지만 젊은 나이에 포르쉐를 타고 다니고, 넓은 집에서 취미로 요리를 하고, 대낮에도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저녁이면 친구들과 홈 파티를 하는 벤의 라이프스타일은 앞서의 두 젊은이들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삶의 균형에 균열을 일으킨다.
마치 불과 물이 만난 느낌. 수증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그건 종수의 심경을 흔들어놓고, 해미의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을 보면서도 벤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지은 채, 일견 그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 그러면 벤이 또 악역인가 하고 물으면 여기엔 쉽게 그렇다고 답하기도 어렵다. 영화 내내 그가 보여준 건 해미와 종수에 대한 호의와 선물이었으니까.(물론 수상함으로만 따지면 감당이 안 될 정도지만)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가 ‘부조리’이다. 벤의 삶을 뒤쫓으면서 종수는 인생의 부조리함을 강하게 느낀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종수가 겪고 있는 문제는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아버지의 성격에는 문제가 있었고, 그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가난한 젊은이였다. 해미가 지고 있는 빚은 경제적인 문제였지만 그녀의 나머지 삶 전체를 괴롭히는 올무와 같았다. 그런데 그게 그들을 괴롭힌다.
어쩌면 이 부조리를 가장 강하게 느꼈던 것은 벤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해미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녀와 벤 사이의 관계는 연애 감정이 아니었고, 일방적으로 호의를 주고받는, 어떻게 보면 ‘원조교제’ 느낌과도 같았다. 이런 상황은 그녀 속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의 성향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일.
해미의 실종은 단순한 강력사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부조리를 강하게 느낀 그녀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렇게 보면 부조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해소하기 위한 종수의 선택이 파국으로 끝나는 것도 한 가지 선택. 그럼 벤은? 그 역시 이런 삶의 부조리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소소한 일탈’로 쌓인 스트레스를 배출하고 다시 일상의 안전함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묻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어른이 사라져버린 시대. 마치 소설 ‘파리대왕’ 속 아이들처럼, 인물들은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다가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물론 여기서 ‘어른’이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다.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건설을 기를 쓰며 막고, 비참하게 죽은 어린아이들을 기리기 위한 작은 공간마저 반대하고, 철지난 50년 전 인물을 끌어들여 권력을 이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유지한 비틀린 사회구조는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을 고립시키다가, 결국 파국으로 몰아넣고 말 것이다.
해미는 어디로 간 걸까? 종수는 왜 그렇게 벤을 의심스럽게 여기는 걸까, 그리고 벤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는 수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명확히 대답을 하지는 않고 끝나버린다. 사실 뭐 우리 삶이라는 게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게 많지 않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 이렇게 사라져버린 해미와 이렇게 폭발해버린 종수는 얼마나 많을까. 또 이렇게 고민하지 않고 순응하는 벤은 또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