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틀란티스야, 잘 가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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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렇게 싫었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내 뚱뚱한 실존을 드러내라고 채근질을 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이 쓰라릴 때면 나는 또 구석에 앉아서 단팥이 들어간 빵을 집어먹었다. 더 뚱뚱해질까봐 겁이 나는데도 먹었다. 빈속에 단맛이 들어가면 슬프고 외로웠다. 나는 그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천장을 올려다보던 마음이 내가 문학으로 가는 모퉁이였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우울했던 소녀」, 허수경 『길모퉁이의 중국식당』中에서)


  아직도 그때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 열쇠가 달린 일기장을 사서 그날 일어난 일과 감정을 기록했다. 오늘은 엄마 집에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라든지 수학여행 가는 버스에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갔던 일을 적었다. 엄마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빈 집을 서성이던 감정과 아무도 앉아주려 하지 않아 2박 3일 내내 선생님 옆에서 말없이 갔던 여행의 모욕감을. 이야기할 상대를 찾지 못한 나는 쓰고 또 썼다. 


  새 학기가 되면 애들은 짝꿍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전 학년부터 친해진 애들끼리 패가 만들어지거나 번호대로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단짝이 되기도 했다. 나는 서툴고 어설펐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디 사니라고 물어보는 것도 자연스럽게 해내지 못했다. 말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집 사정을 훤히 알던 그 애들은 나를 무리에 끼어 주지 않았다. 


  겨우 짝꿍이랑 대화를 이어갈 때쯤 무리의 대장 아이가 짝꿍에게 눈짓을 했다. 복도로 함께 나가 소곤거렸다. 재랑 놀지마라고 말하는 입모양을 볼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어떻게 우리 집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걸 곧바로 일러주는 것일까. 새 학기 첫날, 친구 사귀기에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분식집이 있었다. 그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게 닭을 팔았다. 조각낸 닭을 기름에 넣고 익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천 원에 두 개를 살 수 있었다. 조금 더 몸집이 큰 닭 조각을 골라서 집으로 걸어갔다. 방금 튀긴 닭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친구가 없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여자는 하루에 이천 원을 주었다. 버스비와 군것질을 하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에 걸어갔고 집에 올 때도 버스를 타지 않았다. 버스비를 아껴 장판에 넣어 두었다. 나중에 엄마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때 줄 계획이었다. 남은 돈은 그렇게 학교에서 수군거림을 들을 때 속상한 마음이 허기로 돌변할 때 튀김집에 가서 닭을 사면서 썼다. 교복을 얼른 벗고 인간극장 같은 것을 보며 닭을 먹었다. 천천히. 오랫동안. 


  일기장에 경실이라는 이름 대신 미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소녀와 텔레비전 불빛만이 밝은 세계라고 믿었던 중학교 2학년의 나는 만난다. 허수경은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에서 자신을 '우울했던 소녀'라고 밝혔다. 뚱뚱하고 우울해 자꾸 숨으려 하던 소녀. 뚱뚱해질까 봐 겁이 나는데도 단팥빵을 먹던 소녀는 『아틀란티스야, 잘 가』의 경실이로 찾아왔다. 시청 건설부 부국장 아버지와 예쁘고 날씬한 엄마를 가진 경실이는 뚱뚱하다. 경실이 말대로 겁나게 뚱뚱하다. 새 학기가 되어도 애들이 말을 걸어주지 않고 매해 교복을 새로 맞춰야 한다. 


  그런 경실이는 별을 바라보는 것과 만수 씨네 가게에 가서 찐빵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발레 하는 소녀가 그려진 일기장을 사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경실이. 엄마는 계모임에 나가느라 저녁은 늘 경실이 혼자 먹는다. 엄마는 경실이가 중학교에 올라가자 도시락 싸는 걸 그만두었다. 경실이가 먹을 수 있는 건 김치나 오징어채. 그도 없으면 엄마는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으라며 돈을 주었다. 


  혼자 밥을 먹으면 외로워지는 경실이. 외로움이 경실이를 뚱뚱하게 만들었다. 잘 움직이지 않았고 살은 점점 불어나고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게 싫어 방에만 있었다. 신체검사 날에는 저울에 올라서면서 울었다. 애들이 자꾸 몰려와 눈금을 보려 했다. 경실이 아버지는 공무원인데 돈을 받았다. 건축 허가를 내주고 받은 돈으로 건물을 샀다. 


  뚱뚱하고 못생긴 경실이는 남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자신의 말을 일기장에 쏟아 낸다. 친구가 별로 없다고 만수 씨네 찐빵 가게에 가서 숙제를 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아버지는 집안에서 손님처럼 군다고 써 내려간다. 이복 언니라고 밝힌 정우가 찾아와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에 사는 소녀 이야기를 짓자고 하면서 경실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일기장에게 해준다. '아틀란티스에 살았던 멋진 소녀, 미미. 그 아이는 박경실, 바로 나.'


  이야기의 주인이 되면서 경실이의 현재는 다르게 변해간다. 독서클럽에 가입하면서 미숙이와 용식이라는 친구를 만난다. 우리 모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현실의 주인공이 될 순 없을지라도. 자신만의 낙원 아틀란티스를 만들어 가는 서술자는 될 수 있다. 그 시절 내가 쓴 일기에는 혼자 닭튀김을 먹고 장판 밑에 돈을 모으던 나와 언젠가는 작가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소망하는 다른 나가 존재했다. 닭튀김을 먹다 보니 교복이 작아졌고 체육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었다. 경실이 엄마처럼 매해 교복을 맞춰주는 엄마는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선배의 교복을 물려 입고 학교에 간 첫날, 블라우스의 상표를 보여주며 어디 교복집에서 샀다며 자랑하는 아이들 곁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 이 집으로 올 때 나는 고마 숨어버리고 싶었제. 어디로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용기를 내서 들어와봤더니 니가 있더라. 니가 없었시모 내는 이 집을 아주 오래전에 나갔을 끼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 정우가 이 집에 머문 것이 나 때문이었다고?

"나 때문에?"

"니는 나처럼 외로운 아이 아이가. 척, 보고도 알아보겄더라. 안 그라모 별로 식탐도 없는 아가 와 그리 뚱뚱하겄노?"

(『아틀란티스야, 잘 가』中에서, 허수경)


  국이 있다고 했는데 냉장고에 넣어 놓지 않아서 쉬어 있었다. 밥통에 밥은 오래 두어 노랗게 말라 있고 냉장고에는 쉰 김치가 전부였다. 닭튀김을 먹고 숙제를 했다. 꼭 내 숙제를 베끼는 아이가 있었다. 글씨를 잘 쓰고 마르고 얼굴이 하얀 그 애는 내게 공책을 달라고 할 때만 말을 걸었다. 그 순간을 위해 교과서를 보면서 문제를 만들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름다운 세계는 소설 안에서만 만나기로 결심했다. 쉰 국과 김치가 있는 현실에서 난장이 가족이 살고 있는 허구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뚱뚱한 몸이 싫어서 혼자 우는 아이. 찐빵 다섯 개를 사서 혼자 먹는 아이. 경실이의 아틀란티스는 고대 전설로 남겠지만 나는 현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산문은 그게 사실이라서 가슴이 저린다. 시인의 소설은 고백이 허구가 되어서 마음이 애린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급하게 음식을 먹지 말라던 잔소리를 듣고서야 유년의 허기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밥을 먹을 때는 그 한 끼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말도 없이 먹는다.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이 흰빛의 마라톤을 무심히 지켜보아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

(「눈」, 허수경)


  뚱뚱한 실존을 가졌던 시인은 아프다. 겨우 눈 속을 헤치고 달려와 밤의 장막을 걷어내며 빛을 그러않았을 시인에게 오늘과 내일을 보낸다. 빛 안에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남쪽 도시의 강물 소리를 담아 보낸다. 강 아래에서 밤새 시를 읽고 시로 살아가리라 다짐한 뚱뚱한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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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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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병모는 단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의 세계를 묘사했다면 장편 『네 이웃의 식탁』은 공동체의 선한 힘으로 가장한 모욕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저출산으로 인구 절벽으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에서 시골로 발령받은 젊은 부부는 아이를 낳기 위해 교통의 불편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한다. 『네 이웃의 식탁』은 저출산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흥미로운 정책을 가져온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자녀가 한 명 이상은 있어야 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새로 지은 공동주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정책이다. 입주 조건은 까다로워서 챙겨야 할 서류가 한 뭉치이다. 서울의 치솟는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한 조효내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냈다가 당첨되었다. 공동주택에 들어가기 전 쓴 자필 서약서에는 자녀를 최소 셋 이상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었다. 


  조건은 대략 이렇다. 자녀가 1인 이상 있어야 하는 인구 생산 능력이 증명된 만 42세 미만의 한국인 이성 부부. 부부 둘 중 한 사람만 직장에 다녀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최적의 조건들로 제시된 공동주택의 입소 조건은 까다로운 듯 까다롭지 않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맞벌이로 해석하는 조항은 그렇다 치고 공동주택에 살면서 십 년 이내에 아이를 셋으로 만들어야 하는 조건에서는 고개를 흔들겠지만 신청률은 높았다. 무섭게 오르는 집값이 조항의 불합리함을 이겼다. 


  모두 열두 가구가 들어올 수 있는 공동주택에 이미 세 가구가 들어와 있다. 소설은 뒤뜰 식탁에 모여 새로운 부부 전은오, 서요진의 입주를 환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른 열여섯, 아이 예닐곱은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식탁은 경비가 남아서 들인 게 아닌 목적이 분명한 것으로 보였다. 이미 입주해 들어와 있는 홍단희, 신재강 부부. 전날 그림 작업으로 빠진 조효내를 제외한 손상낙과 고여산, 강교원 부부가 새로 온 부부를 축하해 주고 있다. 


  준비하는 영화가 엎어지는 바람에 집에 있는 전은오. 사촌 언니의 약국에서 카운터 일을 봐주는 서요진. 사람들은 처음 만난 그들의 직업과 현재 사회적 포지션을 거리낌 없이 물어온다. 카운터에서 처방전을 입력하고 약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는 서요진의 일에 대해 자신들이 느끼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들에게서 서요진은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대체 내가 느끼지도 않은 감정을 어떻게 추출할 수 있단 말인가. 전은오와 서요진 부부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서 꿈과 미래를 찾기 위한 실험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의 없는 간섭과 희생을 조롱한다. 각자의 집에 살아가는 입주민인데 마치 한 집에 사는 가족처럼 대하는 홍단희. 쓰레기 분리수거 날에 내려와서 함께 하지 않는다고 초인종을 누르고 조효내를 찾아가는 대담성을 보이는 홍단희. 차가 고장 나 어쩌다 카풀을 함께 하는 것뿐인데 서요진에게 은근한 추파를 던지는 신재강. 우리가 남이 가라는 사상에 물든 그들은 아이를 모아 놓고 공동육아를 하자는 제안까지 하기에 이른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하는 요원한 사이인 친척보다 옆집, 앞집에 사는 이웃이 더 가깝다는 말인데 이웃이 가까워지는 순간 하우스 스릴러가 펼쳐진다. 부엌에 숟가락 몇 개까지 다 안다는 게 친밀함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진다. 대체 싱크대 안에 넣어 두었던 숟가락을 언제 세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밥 먹으러 커피 마시러 올 때 도와주려고 제 집처럼 부엌살림을 눈여겨봤을 수도 있지만 그 집 싱크대에 물 때 낀 거 보니 여자가 게을러 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구병모의 단단한 문장과 함께 꿈과 미래를 위해 실험에 참가한 공동주택에 입주한 네 이웃의 일상을 촘촘하게 관찰할 수 있다. 사람들이 둘 이상 모이면 가질 수 있는 은근한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소설은 묘사한다. 직업이 뭐냐, 어디에서 일하냐. 애는 왜 하나냐 또는 왜 애는 없냐. 언제 낳을 거냐. 궁금하지도 않은 척 물어대는 질문의 끝에는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의 내리는 호기심으로 살아가는 홍단희들이 있다. 완장 하나를 차고서 자신이 만든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막무가내의 이웃들이. 


  네 이웃의 식탁에서 펼쳐지는 염탐 호기심 충만 스릴러의 세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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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최면 / 아내의 편지 / 라일락 / 데지레의 아기 / 바이유 너머 얼리퍼플오키드 1
케이트 쇼팽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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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쇼팽의 단편 「최면」에서 폴린의 묘사는 이렇다. '폴린은 까무잡잡하고 덩치가 작은 데다 머리는 복슬복슬하고 안경을 꼈다. 학구열이 상당했고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적 마인드로 연구했고 수학적인 도표로 얻을 수 있는 학문에 열중했다. 한마디로 폴린은 패버햄이 혐오하는 유형이었다.'


  문장을 읽다가 책날개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케이트 쇼팽이 소설을 쓴 시대는 1800년대 후반이다. 작가를 특정 범주에 넣는 일은 위험하다. 한 세계를 그리다 보면 틀에 갇히곤 하지만 작가란 본래 자유로운 주제를 다루려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케이트 쇼팽의 단편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의 표지에는 '페미니스즘 소설의 선구자'라는 글이 적혀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소설로써 대안을 찾아 보려 한다. 


  폴린은 여성이다. 안경을 썼고 학구열이 높다. 그레이엄의 여자친구이기도 하다. 그레이엄은 대학교수이면서 초능력 연구에 관심이 많고 최면술 학회 회원이다. 그레이엄의 친구 패버햄은 폴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구도 애인도 소중한 그레이엄은 패버햄이 폴린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최면을 걸기로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성공이다 못해 둘의 관계는 예측 불가능의 상태로 나아간다.


  안경. 폴린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여성이다. 매혹적이거나 여자다운 면을 찾아 볼 수 없다. 패버햄은 폴린을 만날 때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무시한다. 많은 여성들이 안경을 쓴다. 매일 아침 렌즈를 끼우느라 눈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안약을 넣으며 원치 않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므로. 주변에는 안경을 쓴 사람들이 많다.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여성들이 안경을 쓰고 나온 적이 있던가. 최근에 한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화제가 되었다. 눈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우고 피곤한데도 안약을 넣었던 수고스러운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화제가 될만한 일인가, 안경을 쓰는 일이. 주변에 안경을 쓴 여성들은 너무나 흔한데. 생각해보면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거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여성의 얼굴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케이트 쇼팽의 단편들은 페미니즘의 주제로만 묶기엔 다양성이 많은 소설이다. 물론 그렇게 읽어도 좋다. 어떻게 읽든 독자의 자유와 판단에 맡기면 된다. 이야기는 짧지만 구조는 완벽하다. 몇 장 안 되는 소설에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황망해하다가 이내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웃어 대는 멜라드 부인이 나오는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친한 친구에게 애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남자가 나오는 「최면」을 거쳐 죽은 아내가 남긴 편지를 어쩌지 못해 갈등하는 남편의 초조한 심리를 그린 「아내의 편지」는 단편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마음껏 발현하고 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권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글을 쓴다. 작가 케이트 쇼팽이 쓴 단편은 100편에 달한다. 한국으로 날아온 소설은 여섯 편에 불과하지만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은 상당하다. 반전과 유머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라일락」의 에드리언은 잠긴 예배당 앞에서 울겠지만 소설 이후의 삶은 다르게 펼쳐질 것이라 예감한다. 「데지레의 아기」는 모파상의 소설만큼이나 뛰어난 반전을 선사한다. 「바이유 너머」를 경험한 다정한 재클린은 새로운 삶으로 한 발 나아갈 것이다. 


  둘로 나누어 미워하고 비난하는 세계가 아닌 차이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현재를 꿈꾸며 소설을 써 나갔을 케이트 쇼팽의 일곱 번째 소설을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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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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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헤리 홀레, 매튜 스커더, 요시키 형사, 마르틴 베크. 모두 추리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범죄가 발생한다. 잔혹한 현장에서 그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찾기 위해 서류를 들여다보고 팀원들 혹은 혼자서 퍼즐을 맞춘다.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는 전직 형사로서 알코올 중독에 걸린 탐정이다. 도시의 여자들이 사라지면 의뢰인이 매튜 스커더를 찾아온다. 전직 형사의 인맥으로 단서를 모으고 혼자 도시의 밤 골목을 걷다 습격을 받기도 한다. 요 네스뵈의 헤리 홀레 역시 알코올 중독이다. 


  다들 그렇게 심연을 들여다보다 심연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는 괴물이 되어 간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훑으며 니코틴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악과 싸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형사와 탐정 시리즈를 읽으며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진행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묘미는 경찰 특유의 직관력보다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빠진 조각을 줍듯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결정적인 한 방이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이든 미국이든 세계 각지의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는 형사와 탐정과 함께 하기를 즐겨 하는 독자에게 난감하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 하나가 던져졌다.


   수준 높은 복지 국가 스웨덴에서 날아온 벡스트룀 형사는 같은 국가 출신인 마르틴 베크와 미카엘, 리스벨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후자의 인물들이 정의와 사건의 진실 등에 관한 보편적인 감정을 소유한 인물들이라 하면 벡스트룀 형사는 반대편에 선 인물이다. 범죄학자이면서 소설가인 레이프 페르손은 악당 한 명을 창조해 냈다. 악당이라는 글자 뒤에 형사를 붙여야 하니 독자로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용을 죽인 형사』는 벡스트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벡스트룀은 폭식과 폭음이 전문이며 사건 수사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각종 차별적인 생각들을 서슴없이 하는 벡스트룀. 사건이 벌어지고 젊은 시절 자신이 교육한 후배 경찰 밑에서 일하게 됐을 때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굴욕적이라거나 수치스럽다는 감정 따위 느끼지 않는다. 오직 의사가 진단한 술을 끊고 야채샐러드로 식사를 해야 하는 생활이 힘들 뿐이다. 


  복지 국가라는 이면 뒤에 가려진 스웨덴의 잔혹 범죄를 그리는 레이프 페르손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물 벡스트룀을 내세우는 방법을 취하는 전략을 취한다. 자국의 심각한 범죄 문제에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선과 악이라는 진부한 구성을 피하기 위해 악당 형사 벡스트룀을 창조한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나쁜 인간. 사건을 해결하는 이는 착하고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공식을 파괴한다. 


  술고래이면서 전직 회계사가 냄비 뚜껑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신문 배달부가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배달부는 소말리아 난민으로서 스웨덴으로 오기 전 시체를 일상으로 본 인물이다. 그렇기에 신고할 때도 떨거나 흐느끼지 않는다. 경찰은 난민인 배달부를 다른 스웨덴 시민과 다르게 거칠게 대한다. 술고래 회계사가 사는 집 주변을 탐문 수색한다. 건축 현장에 있던 목수는 살인 현장에 쓰였을 옷가지를 발견한다.


  솔나 경찰서의 초동수사 지휘관인 벡스트룀이 사건을 맡는다. 그는 팀을 이루는 경찰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비웃음을 날린다. 굉장히 혐오스러운 생각도 서슴지 않게 한다. 여자와 이민자로 구성된 팀에서 벡스트룀은 겉으로는 사건 수사에 노회한 경찰인 척 굴지만 차별적인 생각들을 끊임없이 한다. 실제 벡스트룀은 생각을 말하지는 않는다. 


  회계사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신고자인 신문 배달부가 목이 졸려 물속에서 시체로 떠오른다.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수사는 다른 방향에서 변곡점을 맞는다. 회계사를 둘러싼 배후에는 돈 세탁과 전직 경찰이 엮여 있고 이란 출신 이민자 형제들이 등장한다. 


  벡스트룀 경감은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국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전 상사의 부패를 밝히려다 재산추적과라는 엉뚱한 곳으로 좌천됐다. 경찰 조직에서 벡스트룀 같은 인물은 골칫거리였다. 그를 이 년 동안 도난당한 자전거와 분실된 지갑 곁에 둔 윗선은 그를 다시 솔나 경찰서로 보내 버렸다. 분실물 창고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다시 한 번 상사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기까지 한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일어나 반격을 시작한다. 


  솔나 경찰서로 부임하면서 맡게 된 연쇄 살인을 벡스트룀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경찰 노조의 아는 힘으로 총기를 간신히 소지한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술집이었다. 노란색 리넨 고급 양복을 입고서. 수사국의 팀원들이(벡스트룀은 팀원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탐문 수사와 회계사의 공책에서 발견한 숫자를 조합하는 동안 벡스트룀은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 현장에서의 일을 계속 생각한다. 이상하다, 이상하단 말이지. 


  사건은 생각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함정에 빠진다. 사건을 조종하는 배후는 누구인가. 


  형사의 반대말은? 


  동생 안 사. 


  ······


  피식 웃기라도 했다면 성공. 현실에는 없다. 뛰어난 직관과 추리력으로 사건 현장을 둘러 보고 범인의 윤곽을 그리는 형사는. 정의와 용감함, 의협심과 투지로 똘똘 뭉친 형사는 없다. 뚱뚱하고 폭식과 폭음을 즐기고 같은 경찰의 말도 믿지 못해 혼자 집으로 돌아와 괴한들에게 무릎을 꿇는 벡스트룀이 있을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악당을 만나보고 싶다면 레이프 페르손의 『용을 죽인 형사』를 추천한다. 


  허구와 가상에서라도 용감하고 정의로운 형사를 꿈꾼다면 그래도 『용을 죽인 형사』를 만나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형사 시리즈가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큰 아이들'에게 던지는 악당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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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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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 작가라······작가들은 보통 교통사고도 잘 안 난다던데······운전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여기 있네요, 작가. 작가는 일용 잡급에 해당하니까······일당 만팔천원이네요."

아아, 그렇군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고개라도 끄덕거려야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아무렇지 않아 보일 것만 같았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中에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수록)


  그러니까 작가 이기호는 외장하드를 사러 중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병맛 소설'이라고 분류된 자신의 책을 발견한다. 그룹 1, 2에서 다섯 권을 사면 공짜로 준다는 글과 함께. '제임스셔터내려'에게 연락해 직거래를 하자고 한다. 자는 아내를 깨워 모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아내는 인터넷 그만하고 소설이나 쓰라고 한다. 소설가가 소설을 안 쓰는 게 모욕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광주송정역에서 행신행 KTX를 타고 '제임스셔텨내려'를 만나러 간다. 책을 받아들고 열심히 들여다본다. 책은 흠집이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다. 드디어 자신의 책을 펼쳐보는 소설가 이기호. 그곳에는 '최미진님께. 좋은 인연. 2014년 7월 28일 합정에서 이기호'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제임스셔터내려'는 이기호를 알아보고 도망간다. 다시 돌아와 책과 돈을 교환한다.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하는 '제임스셔터내려'에게 이기호는 소설이 그렇게 한심했냐고 묻는다. 최미진이 누구냐고도 묻지만 '제임스셔터내려'는 달려간다. 


  소설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이기호는 '제임스셔터내려'가 박형서인지 자신이 아는 누군가인지 궁금했다.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로 한 사람의 얼굴을 알고 싶은 마음에 광주에서 서울까지 달려간다. 야구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인 남자가 있을 뿐이고 그를 알아본 '제임스셔터내려'는 계속 죄송하다고 말한다. 작가들도 그런 사이트에 들어올지 몰랐다면서. 


  그래서 소설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상대의 반응은 호의도 적의도 아닌 어정쩡한 호기심일 뿐이다. 아, 그러세요는 괜찮은 반응이다. 화성에서 살다 돌아온 외계인 보듯 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라 그런 직업이 지구상에 있단 말이지 의심을 하는 이도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전 오기로 했던 크레인 기사를 찾아가 돼지갈비와 떡갈비, 비빔냉면을 사주면서도 소설가는 왜 소설을 써야 하는지 자신조차도 알지 못한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에서 과적 단속에 걸려 현장에 오지 못한 크레인 기사와 술을 마시는 소설가는 나중에 할부 이십 개월이 남은 아이폰이 박살 나서 운다.


  그럼에도 소설은 쓰지 못하고 동네 호프집에 앉아 소주 탄 생맥주를 마시는 '나'는 소설가다. 사채업자에게 두 번 돈을 보낸 권순찬 씨가 아파트 앞에서 천막을 치고 있을 때도 입주민 대표에 의해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교수님이니까, 맞춤법을 봐달라는 권순찬 씨의 부탁도 들어준다. 그게 소설가고 교수님인데 소설은 못 쓰고 학교는 열심히 다니는데 업무는 너무 많은 그런 일인데. 사채업자를 만나러 온 권순찬 씨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데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소설가란 직업은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화자 본인조차도 의심할 정도다. 「한정희와 나」에서는 학폭위에 회부된 한정희가 결국 서면 조치로 끝나자 한다는 말이 고모부는 작가니까 대신 써달라고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중고 사이트에 그룹 3으로 '병맛 소설'로 덤으로 끼워 주는 자신의 책을 들여다보고 판매자가 누구인지 찾아가고 술 마시고 핸드폰 깨져 울고 틀린 맞춤법을 봐주고 사과문을 대신 써주는 일들에 초연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 하는 질문에 딴청 피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소설이, 대단한가. 


  그 시간에 축구나 보고 인문학 책이나 보는 게 좀 더 그럴 듯하지 않냐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도 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은 대단하지 않다. 부끄럽고 남루해서 비겁한 사람이 되기는 쉽다. 「오래전 김숙희는」을 읽다가 책을 던질뻔했다. 남편 보험금으로 받은 육천만 원 대신 삼백만 원을 찾아 내미는 정재민의 속물스러움에서 발견한 부끄러움 때문에.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움을 감추고 비겁함을 보이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생활인 이기호와 소설가 이기호가 만나는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리한 구조를 선보인다. 작가의 말 대신 「이기호의 말」을 넣어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간이 안 되게 만들면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소설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이득인가. 대단하지 않은 걸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소설이 대단하지 않아도 대단하게 보이고 싶은 소설가의 소심한 복수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들어 있다. 세상을 향한 거창한 복수 말고 소설로써 욕심부리지 않고 애꿎은 사람에게 화내지 않으려는 몸부림 말이다. 


  일당 만 팔천 원의 하루가 모여 삶의 적의를 꾹꾹 눌러쓴 한 권의 소설집이 세상에 나왔다. 좋은 인연이라고 믿는 소설가와 독자는 정발산역 2번 출구가 아닌 각자의 책상에서 만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먹었는데 입안에 가시를 박아 넣는 선인장 같은 소설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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