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최면 / 아내의 편지 / 라일락 / 데지레의 아기 / 바이유 너머 얼리퍼플오키드 1
케이트 쇼팽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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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쇼팽의 단편 「최면」에서 폴린의 묘사는 이렇다. '폴린은 까무잡잡하고 덩치가 작은 데다 머리는 복슬복슬하고 안경을 꼈다. 학구열이 상당했고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적 마인드로 연구했고 수학적인 도표로 얻을 수 있는 학문에 열중했다. 한마디로 폴린은 패버햄이 혐오하는 유형이었다.'


  문장을 읽다가 책날개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케이트 쇼팽이 소설을 쓴 시대는 1800년대 후반이다. 작가를 특정 범주에 넣는 일은 위험하다. 한 세계를 그리다 보면 틀에 갇히곤 하지만 작가란 본래 자유로운 주제를 다루려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케이트 쇼팽의 단편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의 표지에는 '페미니스즘 소설의 선구자'라는 글이 적혀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소설로써 대안을 찾아 보려 한다. 


  폴린은 여성이다. 안경을 썼고 학구열이 높다. 그레이엄의 여자친구이기도 하다. 그레이엄은 대학교수이면서 초능력 연구에 관심이 많고 최면술 학회 회원이다. 그레이엄의 친구 패버햄은 폴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구도 애인도 소중한 그레이엄은 패버햄이 폴린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최면을 걸기로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성공이다 못해 둘의 관계는 예측 불가능의 상태로 나아간다.


  안경. 폴린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여성이다. 매혹적이거나 여자다운 면을 찾아 볼 수 없다. 패버햄은 폴린을 만날 때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무시한다. 많은 여성들이 안경을 쓴다. 매일 아침 렌즈를 끼우느라 눈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안약을 넣으며 원치 않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므로. 주변에는 안경을 쓴 사람들이 많다.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여성들이 안경을 쓰고 나온 적이 있던가. 최근에 한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화제가 되었다. 눈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우고 피곤한데도 안약을 넣었던 수고스러운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화제가 될만한 일인가, 안경을 쓰는 일이. 주변에 안경을 쓴 여성들은 너무나 흔한데. 생각해보면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거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여성의 얼굴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케이트 쇼팽의 단편들은 페미니즘의 주제로만 묶기엔 다양성이 많은 소설이다. 물론 그렇게 읽어도 좋다. 어떻게 읽든 독자의 자유와 판단에 맡기면 된다. 이야기는 짧지만 구조는 완벽하다. 몇 장 안 되는 소설에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황망해하다가 이내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웃어 대는 멜라드 부인이 나오는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친한 친구에게 애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남자가 나오는 「최면」을 거쳐 죽은 아내가 남긴 편지를 어쩌지 못해 갈등하는 남편의 초조한 심리를 그린 「아내의 편지」는 단편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마음껏 발현하고 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권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글을 쓴다. 작가 케이트 쇼팽이 쓴 단편은 100편에 달한다. 한국으로 날아온 소설은 여섯 편에 불과하지만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은 상당하다. 반전과 유머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라일락」의 에드리언은 잠긴 예배당 앞에서 울겠지만 소설 이후의 삶은 다르게 펼쳐질 것이라 예감한다. 「데지레의 아기」는 모파상의 소설만큼이나 뛰어난 반전을 선사한다. 「바이유 너머」를 경험한 다정한 재클린은 새로운 삶으로 한 발 나아갈 것이다. 


  둘로 나누어 미워하고 비난하는 세계가 아닌 차이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현재를 꿈꾸며 소설을 써 나갔을 케이트 쇼팽의 일곱 번째 소설을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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