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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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 작가라······작가들은 보통 교통사고도 잘 안 난다던데······운전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여기 있네요, 작가. 작가는 일용 잡급에 해당하니까······일당 만팔천원이네요."

아아, 그렇군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고개라도 끄덕거려야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아무렇지 않아 보일 것만 같았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中에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수록)


  그러니까 작가 이기호는 외장하드를 사러 중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병맛 소설'이라고 분류된 자신의 책을 발견한다. 그룹 1, 2에서 다섯 권을 사면 공짜로 준다는 글과 함께. '제임스셔터내려'에게 연락해 직거래를 하자고 한다. 자는 아내를 깨워 모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아내는 인터넷 그만하고 소설이나 쓰라고 한다. 소설가가 소설을 안 쓰는 게 모욕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광주송정역에서 행신행 KTX를 타고 '제임스셔텨내려'를 만나러 간다. 책을 받아들고 열심히 들여다본다. 책은 흠집이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다. 드디어 자신의 책을 펼쳐보는 소설가 이기호. 그곳에는 '최미진님께. 좋은 인연. 2014년 7월 28일 합정에서 이기호'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제임스셔터내려'는 이기호를 알아보고 도망간다. 다시 돌아와 책과 돈을 교환한다.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하는 '제임스셔터내려'에게 이기호는 소설이 그렇게 한심했냐고 묻는다. 최미진이 누구냐고도 묻지만 '제임스셔터내려'는 달려간다. 


  소설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이기호는 '제임스셔터내려'가 박형서인지 자신이 아는 누군가인지 궁금했다.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로 한 사람의 얼굴을 알고 싶은 마음에 광주에서 서울까지 달려간다. 야구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인 남자가 있을 뿐이고 그를 알아본 '제임스셔터내려'는 계속 죄송하다고 말한다. 작가들도 그런 사이트에 들어올지 몰랐다면서. 


  그래서 소설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상대의 반응은 호의도 적의도 아닌 어정쩡한 호기심일 뿐이다. 아, 그러세요는 괜찮은 반응이다. 화성에서 살다 돌아온 외계인 보듯 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라 그런 직업이 지구상에 있단 말이지 의심을 하는 이도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전 오기로 했던 크레인 기사를 찾아가 돼지갈비와 떡갈비, 비빔냉면을 사주면서도 소설가는 왜 소설을 써야 하는지 자신조차도 알지 못한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에서 과적 단속에 걸려 현장에 오지 못한 크레인 기사와 술을 마시는 소설가는 나중에 할부 이십 개월이 남은 아이폰이 박살 나서 운다.


  그럼에도 소설은 쓰지 못하고 동네 호프집에 앉아 소주 탄 생맥주를 마시는 '나'는 소설가다. 사채업자에게 두 번 돈을 보낸 권순찬 씨가 아파트 앞에서 천막을 치고 있을 때도 입주민 대표에 의해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교수님이니까, 맞춤법을 봐달라는 권순찬 씨의 부탁도 들어준다. 그게 소설가고 교수님인데 소설은 못 쓰고 학교는 열심히 다니는데 업무는 너무 많은 그런 일인데. 사채업자를 만나러 온 권순찬 씨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데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소설가란 직업은 그게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화자 본인조차도 의심할 정도다. 「한정희와 나」에서는 학폭위에 회부된 한정희가 결국 서면 조치로 끝나자 한다는 말이 고모부는 작가니까 대신 써달라고 이야기한다. 소설가는 중고 사이트에 그룹 3으로 '병맛 소설'로 덤으로 끼워 주는 자신의 책을 들여다보고 판매자가 누구인지 찾아가고 술 마시고 핸드폰 깨져 울고 틀린 맞춤법을 봐주고 사과문을 대신 써주는 일들에 초연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 하는 질문에 딴청 피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소설이, 대단한가. 


  그 시간에 축구나 보고 인문학 책이나 보는 게 좀 더 그럴 듯하지 않냐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도 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은 대단하지 않다. 부끄럽고 남루해서 비겁한 사람이 되기는 쉽다. 「오래전 김숙희는」을 읽다가 책을 던질뻔했다. 남편 보험금으로 받은 육천만 원 대신 삼백만 원을 찾아 내미는 정재민의 속물스러움에서 발견한 부끄러움 때문에.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움을 감추고 비겁함을 보이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생활인 이기호와 소설가 이기호가 만나는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리한 구조를 선보인다. 작가의 말 대신 「이기호의 말」을 넣어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간이 안 되게 만들면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소설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이득인가. 대단하지 않은 걸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소설이 대단하지 않아도 대단하게 보이고 싶은 소설가의 소심한 복수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들어 있다. 세상을 향한 거창한 복수 말고 소설로써 욕심부리지 않고 애꿎은 사람에게 화내지 않으려는 몸부림 말이다. 


  일당 만 팔천 원의 하루가 모여 삶의 적의를 꾹꾹 눌러쓴 한 권의 소설집이 세상에 나왔다. 좋은 인연이라고 믿는 소설가와 독자는 정발산역 2번 출구가 아닌 각자의 책상에서 만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먹었는데 입안에 가시를 박아 넣는 선인장 같은 소설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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