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헤리 홀레, 매튜 스커더, 요시키 형사, 마르틴 베크. 모두 추리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범죄가 발생한다. 잔혹한 현장에서 그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찾기 위해 서류를 들여다보고 팀원들 혹은 혼자서 퍼즐을 맞춘다.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는 전직 형사로서 알코올 중독에 걸린 탐정이다. 도시의 여자들이 사라지면 의뢰인이 매튜 스커더를 찾아온다. 전직 형사의 인맥으로 단서를 모으고 혼자 도시의 밤 골목을 걷다 습격을 받기도 한다. 요 네스뵈의 헤리 홀레 역시 알코올 중독이다. 


  다들 그렇게 심연을 들여다보다 심연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는 괴물이 되어 간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훑으며 니코틴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악과 싸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형사와 탐정 시리즈를 읽으며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진행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묘미는 경찰 특유의 직관력보다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빠진 조각을 줍듯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결정적인 한 방이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이든 미국이든 세계 각지의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는 형사와 탐정과 함께 하기를 즐겨 하는 독자에게 난감하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 하나가 던져졌다.


   수준 높은 복지 국가 스웨덴에서 날아온 벡스트룀 형사는 같은 국가 출신인 마르틴 베크와 미카엘, 리스벨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후자의 인물들이 정의와 사건의 진실 등에 관한 보편적인 감정을 소유한 인물들이라 하면 벡스트룀 형사는 반대편에 선 인물이다. 범죄학자이면서 소설가인 레이프 페르손은 악당 한 명을 창조해 냈다. 악당이라는 글자 뒤에 형사를 붙여야 하니 독자로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용을 죽인 형사』는 벡스트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벡스트룀은 폭식과 폭음이 전문이며 사건 수사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각종 차별적인 생각들을 서슴없이 하는 벡스트룀. 사건이 벌어지고 젊은 시절 자신이 교육한 후배 경찰 밑에서 일하게 됐을 때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굴욕적이라거나 수치스럽다는 감정 따위 느끼지 않는다. 오직 의사가 진단한 술을 끊고 야채샐러드로 식사를 해야 하는 생활이 힘들 뿐이다. 


  복지 국가라는 이면 뒤에 가려진 스웨덴의 잔혹 범죄를 그리는 레이프 페르손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물 벡스트룀을 내세우는 방법을 취하는 전략을 취한다. 자국의 심각한 범죄 문제에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선과 악이라는 진부한 구성을 피하기 위해 악당 형사 벡스트룀을 창조한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나쁜 인간. 사건을 해결하는 이는 착하고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공식을 파괴한다. 


  술고래이면서 전직 회계사가 냄비 뚜껑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신문 배달부가 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배달부는 소말리아 난민으로서 스웨덴으로 오기 전 시체를 일상으로 본 인물이다. 그렇기에 신고할 때도 떨거나 흐느끼지 않는다. 경찰은 난민인 배달부를 다른 스웨덴 시민과 다르게 거칠게 대한다. 술고래 회계사가 사는 집 주변을 탐문 수색한다. 건축 현장에 있던 목수는 살인 현장에 쓰였을 옷가지를 발견한다.


  솔나 경찰서의 초동수사 지휘관인 벡스트룀이 사건을 맡는다. 그는 팀을 이루는 경찰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비웃음을 날린다. 굉장히 혐오스러운 생각도 서슴지 않게 한다. 여자와 이민자로 구성된 팀에서 벡스트룀은 겉으로는 사건 수사에 노회한 경찰인 척 굴지만 차별적인 생각들을 끊임없이 한다. 실제 벡스트룀은 생각을 말하지는 않는다. 


  회계사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신고자인 신문 배달부가 목이 졸려 물속에서 시체로 떠오른다.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수사는 다른 방향에서 변곡점을 맞는다. 회계사를 둘러싼 배후에는 돈 세탁과 전직 경찰이 엮여 있고 이란 출신 이민자 형제들이 등장한다. 


  벡스트룀 경감은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국에서 일했었다. 그러다 전 상사의 부패를 밝히려다 재산추적과라는 엉뚱한 곳으로 좌천됐다. 경찰 조직에서 벡스트룀 같은 인물은 골칫거리였다. 그를 이 년 동안 도난당한 자전거와 분실된 지갑 곁에 둔 윗선은 그를 다시 솔나 경찰서로 보내 버렸다. 분실물 창고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다시 한 번 상사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기까지 한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일어나 반격을 시작한다. 


  솔나 경찰서로 부임하면서 맡게 된 연쇄 살인을 벡스트룀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경찰 노조의 아는 힘으로 총기를 간신히 소지한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술집이었다. 노란색 리넨 고급 양복을 입고서. 수사국의 팀원들이(벡스트룀은 팀원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탐문 수사와 회계사의 공책에서 발견한 숫자를 조합하는 동안 벡스트룀은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 현장에서의 일을 계속 생각한다. 이상하다, 이상하단 말이지. 


  사건은 생각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함정에 빠진다. 사건을 조종하는 배후는 누구인가. 


  형사의 반대말은? 


  동생 안 사. 


  ······


  피식 웃기라도 했다면 성공. 현실에는 없다. 뛰어난 직관과 추리력으로 사건 현장을 둘러 보고 범인의 윤곽을 그리는 형사는. 정의와 용감함, 의협심과 투지로 똘똘 뭉친 형사는 없다. 뚱뚱하고 폭식과 폭음을 즐기고 같은 경찰의 말도 믿지 못해 혼자 집으로 돌아와 괴한들에게 무릎을 꿇는 벡스트룀이 있을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악당을 만나보고 싶다면 레이프 페르손의 『용을 죽인 형사』를 추천한다. 


  허구와 가상에서라도 용감하고 정의로운 형사를 꿈꾼다면 그래도 『용을 죽인 형사』를 만나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형사 시리즈가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큰 아이들'에게 던지는 악당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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