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잘될 거야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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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회사에서 일해본 적은 없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먹고 살았냐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지 않은 것뿐이지 나름대로 근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회사.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농담이 나도는 곳. 누군가는 들어가고 싶어서 누군가는 들어가서 슬픈 곳, 회사. 좋은 학교에 가는 이유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간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속에서 겪어야 할 갈등과 무한 경쟁은 상상 이상. 이상은 내가 책에서 텔레비전으로 보고 들은 회사의 이미지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가축으로 키워지기 위함이라는데. 도시전설 같은 괴담으로 들려오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대학 졸업하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나 스스로 이력서 들고 찾아간 첫 번째 직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화장실 갈 타이밍 찾기. 밥 빨리 먹기. 윗사람의 기분 맞추기. 혼자 떠들다 조용해지면 웃기.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었다. 바보처럼 매일을 울면서 집에 왔다. 긴 시간 동안 발전적인 일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를테면 영어 공부나 자격증 시험공부 같은. 그러기엔 멀미를 심하게 했다. 매일 버스에 앉아서 흘러가는 풍경에 눈을 주기나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다. 일 년 넘게 일하고 일 년을 쉬었다. 번 돈을 다 까먹고 새롭게 일을 구했다.
 
  두 번째 직장은 집에서 가까운 것 빼고는 좋은 점이 없는 곳이었다. 일하는 직원이 많아 말도 소문도 견제도 많은 곳이었다. 처음 배우는 일은 서툴러서 자주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도 못 해? 그래, 나 모른다, 왜 모르는 데 네가 보태준 거 있냐 라고 화끈하게 말하지 못했다. 네, 아, 그게, 저… 머저리처럼 말만 더듬고 끝내는 웃고 말았다. 


  마스다 미리의 『걱정 마, 잘될 거야』는 회사를 배경으로 세 명의 마리코들의 일상을 다룬다. 24세, 34세, 42세의 마리코들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들이 한 공간에서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일상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수짱을 비롯한 주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려온 마스다 미리는 이번에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마리코들이 각각의 연령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나이에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 지금의 위치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어한다. 


  대학 졸업 후 이제 막 들어온 24세의 마리코. 회사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34세의 마리코. 미혼이면서 임원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42세의 마리코. 그녀들은 주어진 업무를 하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 그녀들은 사람이다. 만화에 나오는 인물일 뿐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게 마리코들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실수를 많이 했다. 함께 어울리고 싶어 이상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툭하면 걸리는 복사기를 발로 차기도 했다. 늘 짜증이 나 있었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던 그때를 마리코들은 떠올리게 한다. 


  은근하게 차별을 한다. 차 끓이기 당번을 정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다. 남자 직원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여직원이라고 한다. 여자가 임원이 되면 사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 사람이 없으면 아줌마 부장이라고 부른다. 『걱정 마, 잘될 거야』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지 않다고 생각되면 노래방 회식에 끼어 주지 않는 장면도 나온다. 질문을 하는 것보다 받는 쪽이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는 마리코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맞아요. 질문은 하는 것보다 받았을 때가 더 기쁘지요. 생각해보니 내내 질문만 했다. 나에 대해 나를 알고 싶어 던지는 질문을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은 없다. 


  애써 올라간 산 너머의 경치는 평지였다는 마리코들의 말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위만 보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애써 올라갔지만 그곳은 다시 걸어야 하는 평지. 그렇다면 위만 보고 살아갈 것이 아닌 손을 잡고 꽃과 나무를 보고 바람을 느끼며 걸어도 좋을 것이다. 오늘 도서관 앞에서 수수꽃다리를 보았다. 보라색 그 꽃의 나무는 내가 자신을 바라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활짝 피어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 마음에 저장. 찰칵.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풍경을. 책도 읽고 그 중에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에세이를 읽으며 나만의 생활 리듬을 조금씩 찾아갔다. 일하고 돌아오는 밤에는 빵집에 들러 달달한 케이크를 사고 방에 누워 일기를 쓰며 내일을 기대하고 화장실을 쓰고 나올 때는 다음 사람을 위하여 화장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사소한 노력을 한다. 절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마스다 미리의 글과 만화에서 얻어간다. 


  별 거 아니다. 새벽 세 시까지 남아서 일해본 적도 있다. 매일 출근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나가 책상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 일하는 나를 보여주느라 바빴다.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일 자체를 하면 되는 거였는데.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을 원하는 도서관으로 가져다주는 책두레 서비스를 알아서 신간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주문할 수 있어서 기쁘다. 오늘 나에게 일본에 사는 언니 마스다 미리 님이 이렇게 말해주어서. 걱정 마,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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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퍼치의 여자들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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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부모, 친구, 애인, 친척 등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혼자일 수 없는 사회에서 혼자라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외롭고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 유즈키 아사코의 장편 소설 『나일 퍼치의 여자들』은 관계 맺기에 관한 작품이다. 유즈키 아사코는 탁월한 솜씨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소설 같지만 세심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없으면 시도하지 못하는 주제를 다룬다. 


여자들의 관계. 굳이 성별을 나누고 싶지 않지만 『나일 퍼치의 여자들』은 여자들이 겪는 관계의 불안을 밀도 있게 다룬다. 명문 대학을 나와 대기업 상사에 정규직으로 다니는 시무라 에리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춘 여성이다. 회사에서는 비중 있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녀는 '넙치의 불량 마나님 일기'라는 블로그의 팬이다. 다른 주부 블로거와는 다르게 넙치는 유연한 생활의 리듬을 담백하게 글로 보여주고 있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 넙치의 블로그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넙치가 올리는 글을 보면서 그녀가 자신과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알았다. 슈퍼마켓 점장으로 일하는 남편을 둔 넙치의 실제 이름은 마루오 쇼코. 카페에서 블로그의 글을 서적화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에리코는 우연히 그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넙치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블로그의 팬이라고 말하면서 에리코는 쇼코와 대화를 시작한다.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녀들은 묘한 관계로 빠져든다. 누구나 선망의 대상인 직장에서 일하고 미모도 아름다운 시무라 에리코에게도 걱정은 있다. 


바로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어쩐 일인지 학창 시절부터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동네에 같이 사는 게이코와 잠시 친해졌지만 에리코의 집착으로 멀어졌다. 집착. 에리코는 관계를 유지하는 힘을 집착으로 이어가고 있다. 혼자서만 그 아이를 차지해야 한다! 다른 친구와의 관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에리코의 생각은 게이코를 지치게 만들었다. 소설은 여자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녀들은 서먹해지지 않기 위해 취향을 숨기고 대화에 끼기 위해 험담에 동조한다. 여자 모임을 만들어 여행을 가고 맛 집에 찾아간다. 완벽한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상대에게 싫다고 말하기를 주저한다. 


에리코와 쇼코는 진정한 우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나일 퍼치는 외래종으로 식성이 대단해 토종 물고기를 모두 잡아먹는 어류이다. 식량으로 쓰기 위해 들여왔지만 이내 버림받고 만다.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조화와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수중에서 혼자만 살아가는 나일 퍼치. 우리는 나일 퍼치가 되어 외롭게 물속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로 살아간다. 혼자서는 살 수 없지만 혼자라도 살아가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유유히 세계 안을 돌아다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유즈키 아사코는 에리코와 쇼코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관계의 이중성을 파헤친다. 


『나일 퍼치의 여자들』을 읽다 보면서 내가 관계에서 느꼈던 불안의 정체를 만날 수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불안이었다. 성격이 이상해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주저하면서 살아왔다. 소설을 읽으며 안심할 수 있었다. 세계와 관계에 대해서. 너만 슬프고 고독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소설, 『나일 퍼치의 여자들』. 뾰족한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놓고 이해를 원할 때 우리는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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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함께 꾸는 꿈
노회찬 지음 / 후마니타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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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일어난 일 중 믿기지 않은 일은 노회찬 의원이 저세상으로 가 버린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보이길 바랐다. 무더위가 극심한 7월 말이었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길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의원직이 상실되고 당이 분열되는 엄혹한 순간에도 버텼는데. 특유의 유머와 촌철살인으로 구태의 정치판에서 빛나던 사람은 이제 없다. 고통과 슬픔의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보듬어 주던 따뜻한 사람이 없다. 


그는 낮은 곳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은 그의 말과 글이 담긴 책이다. 유신 시절을 살던 고등학생 노회찬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교과서에 나온 법의 이념과 현실 정치의 괴리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었다. 대학에 가서 용접을 배워 자격증을 따고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노회찬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 노회찬은 좋은 사람이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늘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몇 정거장 가지도 못하고 만석이 되는 그 버스에 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세상에 외쳤다. 국회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과 밥을 먹고 당신들의 곁에 정의당이 있으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매해 여성의 날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장미꽃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을 읽다 보면 그는 쉬운 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를 그는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하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위트 있게 말한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다. 심각함을 웃음으로 참담함을 위트로 헤쳐 나가는 사람이었다. 혼자만 잘 사는 사회가 아닌 함께 살면서 희망을 꿈꾸자고 말했다. 누구나 악기 하나씩은 다룰 수 있고 교육과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가 꾸는 꿈은 우리가 함께 꾸고 싶은 꿈이었다. 


의무 교육 기간이 늘어나고 배고픈 아이들이 없는 세상.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이루어지는 사회.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이 없는 대한민국. 그가 바라던 세상은 사회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의 꿈이 나의 꿈이 되고 우리의 꿈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가 남기고 간 43개의 법안이 통과될 날을 기다린다. 늘 웃음을 지으며 낡은 구두를 신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던 그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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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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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의 제목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새로운 직장 갑질에 관한 이야기인가. 매일 도시락을 그것도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니, 말세다 말세. 괴로운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아서 책이 나오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책의 소개를 보게 되었다. 아니구나. 오해였구나. 요즘의 내 상황과도 맞물리는 이야기인 것 같아 급하게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회사 생활은 힘든 법. 더구나 요즘 같은 취업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일본이 배경이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연예인들이 한 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고 회사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위해 휴게 시간을 주고 그 시간에 보드게임을 한다. 직급을 따로 부르지 않고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호칭했다. 그 회사에서는 사장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더라. 옷차림도 개성적이었다. 후드티를 입거나 개량 한복을 입은 직원들. 카메라가 돌아가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표정은 밝았다. 


나는 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나 힘들어 죽겠소 하는 표정을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컴퓨터 작업에 서툰 연예인에게 몇 번이나 친절하게 웃음을 보이며 방법을 알려준다. 내내 웃었다, 그 회사 사람들은. 의외로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표정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웃는 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희귀한 존재로서 천연기념물쯤 되겠다. 무표정으로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지시를 한다. 


내가 속이 꼬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맞다, 나 속 엄청 꼬인 사람이다, 인정한다. 회사에 들어오게 된 계기나 회사에서 사원을 뽑는 주제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웃어 버렸다. 물론 이 어려운 시기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자신이 왜 자랑스럽지 않은가. 자신감과 자부심이 듬뿍 든 회사 취업기를 들으며 대단하시네요라는 배알 꼴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봐야 회사 인간. 실제 컴퓨터 사용법을 모르는 사원을 뽑지도 않을거니와 모른다고 물어봐도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온다. 카메라 꺼진 회사의 풍경은 서늘하고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파견 직원 사와다 미치코와 부장 쿠로카와 일명 앗코 짱이라는 별명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앗코 짱은 장신의 가수 와다 아키코와 닮아 앗코 짱으로 불린다. 물론 부장 앞에서는 앗코 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와다는 점심 먹을 상대도 없고 회사 근처에 음식점이 없어 매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외근 업무를 나갔다가 돌아온 부장은 사와다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평소에는 말도 섞지 않았다. 사와다가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자신이 도시락을 대신 먹겠다고 한다. 


톳과 고기 감자조림과 콩자반을 밥과 함께 담은 도시락을 건넨다. 그때부터 사와다와 앗코짱의 점심 바꿔 먹기가 시작된다. 이런 이야기는 안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바꿔서 먹게 한 이야기. 하필 그날 가난한 아이는 처음으로 소시지 반찬을 싸왔다. 그걸 모른 선생님이 바꿔 먹게 해서 가난한 아이는 매일 먹던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 


유즈키 아사코의 앗코짱 시리즈 1탄인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주일 동안 앗코짱과 사와다는 서로의 점심을 바꿔서 먹는다. 앗코짱의 주도하에 벌어진 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와다는 앗코짱의 시간을 경험한다.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정말 좋겠다 하는 모든 면을 가지고 있는 앗코짱. 카리스마 있고 다정하게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눈치도 빨라 다른 이의 곤란을 쉽게 파악한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앗코짱은 사와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려고 한다. 파견 사원 사와다는 자존감을 찾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소설은 네 편의 이야기를 건넨다.『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보다 건네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예쁜 도시락을 감싼 손수건을 풀면 그 안에 따뜻하고 기발하고 싱싱하며 기운 넘치는 네 편의 추억의 맛이 담겨 있다. 지치고 자격지심 때문에 매일 눈물을 흘리며 잠드는 당신에게, 좋은 걸 좋게 보지 못하고 삐뚤게 보는 나에게 어깨를 쭉 펴고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이야기가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안에 있다.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만두고 싶다_앗코짱의 야식」의 제목은 내 일기장을 훔쳐본 건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격하게 공감했다. 


먹어야 산다. 한 끼라도 자신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 먹어야 어른이라고 말한다. 혼자 먹을 도시락을 쌀 때와 부장에게 주기 위해 도시락을 쌀 때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사와다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사와다와 앗코짱의 점심을 구경하며 이건 소설이잖아, 실제는 그렇지 않아, 저런 부장이 어디 있어, 허무에 빠지긴 했다. 카메라 돌아가는 회사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허구의 세계이지만 앗코짱의 시간에 나를 끼어 놓고 싶었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상처받고 아픈 이들을 위한 특별 도시락 세트 같은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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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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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의 소설 『거지 소녀』는 나를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유년으로 데리고 간다. 온전한 추억이 될 수 없었던 겨울의 날들이었다. 그 시절의 경험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해질 수 없다면 글로는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 시절을 글로도 쓰지 않았다. 기억의 벽장 안 맨 아래쪽에 접어 두었다. 기쁘고 좋은 일로 덮어 두었다. 그런 일들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기에 시도 때도 없이 기억은 들춰졌다. 나는 떠올리지 않았는데 문학이 소설이 시가 기억을 데리고 왔다. 『거지 소녀』를 읽으며 내내 겨울이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로즈. 『거지 소녀』의 주인공. 온타리오주 핸래티에 있는 상점 뒤편에서 아버지, 새어머니, 이복동생과 사는 여자아이. 『거지 소녀』는 로즈가 새어머니인 플로의 주도 아래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장엄한 매질」은 로즈의 가족사를 간단하게 보여준다. 로즈가 이복동생 브라이언에게 가르친 험한 말에 대한 추궁에서 시작된 플로와의 신경전은 결국 아버지까지 개입하게 만든다. 매질이 장엄할 수도 있음을 로즈의 아버지는 보여준다.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매질이었다.

겨울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가 나가자마자 아빠는 여자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미술대학에 다닌다고 했던 첫 번째 여자는 질투심이 심했다. 그때 나는 만화로 된 성교육 책을 한 권 구해서 읽고 있었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생기는 몸의 변화를 코믹하게 다룬 책이었다. 단지 성(性)이라는 글자가 있다는 이유로 나를 이상한 애 취급했다. 여자는 내가 읽으면 안 되는 책을 읽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자고 있던 나는 몸이 들려져서 맞았다. 먼저 뺨을 세차게 맞았다. 너무 아파서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면서 여자 말만 듣고 어린 딸을 때린 아빠와의 신뢰 관계는 깨졌다.

「장엄한 매질」을 당하면서 로즈는 성장한다. 『거지 소녀』는 단편 열 편이 모두 한 이야기를 이룬다. 각각 따로 읽을 수도 있는 소설들은 하나로 모인다. 시골 마을에서 여자아이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앨리스 먼로는 삶의 낭만이란 없음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낭만이 무언가. 간신히 유년을 지나왔지만 청소년기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좁은 시골마을에서 도덕성, 정의, 용기 따위는 변소에 쌓인 똥보다 못한 존재이다. 아이들은 순수함과 동심의 상징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나타나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특권」에서 남매간에 행해지는 불온한 놀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로즈는 그런 상실과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바에 의하면 인생이란 대체로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앨리스 먼로, 「특권」中에서, 『거지 소녀』)

로즈가 살면서 겪는 놀라움이란 부끄럽고 기막힌 일들로 인한 것이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행복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인생은 어느 방향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행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침에 무얼 먹냐는 교사의 물음에 로즈는 기발함을 가장한 거짓말을 한다. 자몽 반 개를 먹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몽 반 개」에서 로즈는 흉악한 아이들 틈에서 버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인기 있는 애에게 사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실제 앨리스 먼로는 시골에서 자랐고 책을 좋아했다. 좀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앨리스 먼로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장학생으로 대학에 간다. 로즈 역시 상점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책을 읽는다.

『거지 소녀』는 로즈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지만 그녀의 새어머니 플로와의 사건도 중요하게 다룬다. 열두 살 때 플로는 다른 집으로 보내진다. 학교를 보내달라는 조건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도망쳐 핸래티에 있는 장갑 공장에서 일했다.

아버지에게 플로는 바람직한 여자의 전형이었다. 로즈는 그것을 알았고 실제로 아버지도 자주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활달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거나 비축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빠릿빠릿해야 하고 흥정과 관리에 능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식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적인 면에서는 어수룩하고 아이 같아야 하며, 지도가 긴 단어나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우습게 보고, 아기자기하면서 알쏭달쏭 한 생각, 미신, 전통에 대한 믿음 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앨리스 먼로, 「자몽 반 개」中에서, 『거지 소녀』)

영리하게도 앨리스 먼로는 『거지 소녀』를 여성주의 소설로도 성장 소설로도 읽을 수 있게 곳곳에 암시들을 배치해 놓았다. 플로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여성주의 소설로. 로즈의 인생을 따라가면 성장 소설로. 어떻게 읽느냐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앨리스 먼로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면서 다채로운 세계관을 소설에서 보여준다. 폐쇄적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작가 자신이 살아내야 했던 경험을 아프지 않게 소설로 복원해낸다.

공장 지대의 마을이었다. 옆집과 앞집의 경계가 없는 곳이었다. 어린이날이 되면 이웃집의 아무나와 손을 잡고 놀러 갔다. 그 안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무얼 하냐는 질문 끝에 영어 과외를 한다고 했다. 로즈가 아침으로 자몽 반 개를 먹는다고 말한 것처럼. 한 번만 다시 생각하면 거짓말일게 뻔한 말을 해댔다. 마을에 사는 아이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부끄러움보다 무시가 두려운 시기의 일이었다.

유년은 완성되지 못한다. 로즈는 나이를 먹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녀가 사는 마을로 돌아가 플로와 잠시 지내기도 한다. 소설은 로즈의 일생에 나의 유년과 지금을 겹쳐 놓는다. 로즈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펼쳐지는 기억의 어두운 저편은 나를 쓸쓸하게 만들어 놓고야 만다.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그게 어떤 책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무턱대고 때린 남자를 떠올리게 했고 거짓말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뻔뻔한 꼬마를 기어이 불러냈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결합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앨리스 먼로, 「섭리」中에서, 『거지 소녀』)

『거지 소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에 관한 소설이다. 거짓말을 해서 위악을 떨어서 아픈 타인을 모른척해서 나를 나답게 만들지 못해서 가져야 했던 부끄러움을 농밀하게 표현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 로즈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내내 어둡고 슬프고 절망으로 둘러싸인 채 살아왔다는 증거이므로. 시를 베껴 쓰면서 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질문하던 미스 해티의 진심까지 헤아리려고 한 로즈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 무엇이든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순간을 문학으로 이겨낸 앨리스 먼로. 버티기 싶어서 책을 읽고 장학생이 되어 마을을 떠난 로즈. 그건 오해라고 말하지도 못한 채 맞고 거짓말로 가난을 감추고 싶었던 나. 우리들은 『거지 소녀』의 세계에서 조우한다. 국경을 넘고 언어의 장벽을 부수어 세계라는 문학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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