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의 제목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새로운 직장 갑질에 관한 이야기인가. 매일 도시락을 그것도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니, 말세다 말세. 괴로운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아서 책이 나오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책의 소개를 보게 되었다. 아니구나. 오해였구나. 요즘의 내 상황과도 맞물리는 이야기인 것 같아 급하게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회사 생활은 힘든 법. 더구나 요즘 같은 취업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일본이 배경이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연예인들이 한 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고 회사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위해 휴게 시간을 주고 그 시간에 보드게임을 한다. 직급을 따로 부르지 않고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호칭했다. 그 회사에서는 사장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더라. 옷차림도 개성적이었다. 후드티를 입거나 개량 한복을 입은 직원들. 카메라가 돌아가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표정은 밝았다. 


나는 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나 힘들어 죽겠소 하는 표정을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컴퓨터 작업에 서툰 연예인에게 몇 번이나 친절하게 웃음을 보이며 방법을 알려준다. 내내 웃었다, 그 회사 사람들은. 의외로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표정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웃는 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희귀한 존재로서 천연기념물쯤 되겠다. 무표정으로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지시를 한다. 


내가 속이 꼬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맞다, 나 속 엄청 꼬인 사람이다, 인정한다. 회사에 들어오게 된 계기나 회사에서 사원을 뽑는 주제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웃어 버렸다. 물론 이 어려운 시기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자신이 왜 자랑스럽지 않은가. 자신감과 자부심이 듬뿍 든 회사 취업기를 들으며 대단하시네요라는 배알 꼴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봐야 회사 인간. 실제 컴퓨터 사용법을 모르는 사원을 뽑지도 않을거니와 모른다고 물어봐도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온다. 카메라 꺼진 회사의 풍경은 서늘하고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파견 직원 사와다 미치코와 부장 쿠로카와 일명 앗코 짱이라는 별명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앗코 짱은 장신의 가수 와다 아키코와 닮아 앗코 짱으로 불린다. 물론 부장 앞에서는 앗코 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와다는 점심 먹을 상대도 없고 회사 근처에 음식점이 없어 매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외근 업무를 나갔다가 돌아온 부장은 사와다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다. 평소에는 말도 섞지 않았다. 사와다가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자신이 도시락을 대신 먹겠다고 한다. 


톳과 고기 감자조림과 콩자반을 밥과 함께 담은 도시락을 건넨다. 그때부터 사와다와 앗코짱의 점심 바꿔 먹기가 시작된다. 이런 이야기는 안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바꿔서 먹게 한 이야기. 하필 그날 가난한 아이는 처음으로 소시지 반찬을 싸왔다. 그걸 모른 선생님이 바꿔 먹게 해서 가난한 아이는 매일 먹던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 


유즈키 아사코의 앗코짱 시리즈 1탄인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주일 동안 앗코짱과 사와다는 서로의 점심을 바꿔서 먹는다. 앗코짱의 주도하에 벌어진 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와다는 앗코짱의 시간을 경험한다.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정말 좋겠다 하는 모든 면을 가지고 있는 앗코짱. 카리스마 있고 다정하게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눈치도 빨라 다른 이의 곤란을 쉽게 파악한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앗코짱은 사와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려고 한다. 파견 사원 사와다는 자존감을 찾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소설은 네 편의 이야기를 건넨다.『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보다 건네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예쁜 도시락을 감싼 손수건을 풀면 그 안에 따뜻하고 기발하고 싱싱하며 기운 넘치는 네 편의 추억의 맛이 담겨 있다. 지치고 자격지심 때문에 매일 눈물을 흘리며 잠드는 당신에게, 좋은 걸 좋게 보지 못하고 삐뚤게 보는 나에게 어깨를 쭉 펴고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이야기가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안에 있다.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만두고 싶다_앗코짱의 야식」의 제목은 내 일기장을 훔쳐본 건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격하게 공감했다. 


먹어야 산다. 한 끼라도 자신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 먹어야 어른이라고 말한다. 혼자 먹을 도시락을 쌀 때와 부장에게 주기 위해 도시락을 쌀 때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사와다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사와다와 앗코짱의 점심을 구경하며 이건 소설이잖아, 실제는 그렇지 않아, 저런 부장이 어디 있어, 허무에 빠지긴 했다. 카메라 돌아가는 회사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허구의 세계이지만 앗코짱의 시간에 나를 끼어 놓고 싶었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상처받고 아픈 이들을 위한 특별 도시락 세트 같은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