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잘될 거야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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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회사에서 일해본 적은 없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먹고 살았냐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지 않은 것뿐이지 나름대로 근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회사.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농담이 나도는 곳. 누군가는 들어가고 싶어서 누군가는 들어가서 슬픈 곳, 회사. 좋은 학교에 가는 이유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간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속에서 겪어야 할 갈등과 무한 경쟁은 상상 이상. 이상은 내가 책에서 텔레비전으로 보고 들은 회사의 이미지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가축으로 키워지기 위함이라는데. 도시전설 같은 괴담으로 들려오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대학 졸업하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나 스스로 이력서 들고 찾아간 첫 번째 직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화장실 갈 타이밍 찾기. 밥 빨리 먹기. 윗사람의 기분 맞추기. 혼자 떠들다 조용해지면 웃기.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었다. 바보처럼 매일을 울면서 집에 왔다. 긴 시간 동안 발전적인 일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를테면 영어 공부나 자격증 시험공부 같은. 그러기엔 멀미를 심하게 했다. 매일 버스에 앉아서 흘러가는 풍경에 눈을 주기나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다. 일 년 넘게 일하고 일 년을 쉬었다. 번 돈을 다 까먹고 새롭게 일을 구했다.
 
  두 번째 직장은 집에서 가까운 것 빼고는 좋은 점이 없는 곳이었다. 일하는 직원이 많아 말도 소문도 견제도 많은 곳이었다. 처음 배우는 일은 서툴러서 자주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도 못 해? 그래, 나 모른다, 왜 모르는 데 네가 보태준 거 있냐 라고 화끈하게 말하지 못했다. 네, 아, 그게, 저… 머저리처럼 말만 더듬고 끝내는 웃고 말았다. 


  마스다 미리의 『걱정 마, 잘될 거야』는 회사를 배경으로 세 명의 마리코들의 일상을 다룬다. 24세, 34세, 42세의 마리코들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들이 한 공간에서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일상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수짱을 비롯한 주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려온 마스다 미리는 이번에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마리코들이 각각의 연령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나이에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 지금의 위치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어한다. 


  대학 졸업 후 이제 막 들어온 24세의 마리코. 회사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34세의 마리코. 미혼이면서 임원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42세의 마리코. 그녀들은 주어진 업무를 하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 그녀들은 사람이다. 만화에 나오는 인물일 뿐이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게 마리코들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실수를 많이 했다. 함께 어울리고 싶어 이상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툭하면 걸리는 복사기를 발로 차기도 했다. 늘 짜증이 나 있었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던 그때를 마리코들은 떠올리게 한다. 


  은근하게 차별을 한다. 차 끓이기 당번을 정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다. 남자 직원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여직원이라고 한다. 여자가 임원이 되면 사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 사람이 없으면 아줌마 부장이라고 부른다. 『걱정 마, 잘될 거야』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지 않다고 생각되면 노래방 회식에 끼어 주지 않는 장면도 나온다. 질문을 하는 것보다 받는 쪽이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는 마리코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맞아요. 질문은 하는 것보다 받았을 때가 더 기쁘지요. 생각해보니 내내 질문만 했다. 나에 대해 나를 알고 싶어 던지는 질문을 제대로 받아 본 기억은 없다. 


  애써 올라간 산 너머의 경치는 평지였다는 마리코들의 말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위만 보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애써 올라갔지만 그곳은 다시 걸어야 하는 평지. 그렇다면 위만 보고 살아갈 것이 아닌 손을 잡고 꽃과 나무를 보고 바람을 느끼며 걸어도 좋을 것이다. 오늘 도서관 앞에서 수수꽃다리를 보았다. 보라색 그 꽃의 나무는 내가 자신을 바라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활짝 피어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 마음에 저장. 찰칵.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풍경을. 책도 읽고 그 중에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에세이를 읽으며 나만의 생활 리듬을 조금씩 찾아갔다. 일하고 돌아오는 밤에는 빵집에 들러 달달한 케이크를 사고 방에 누워 일기를 쓰며 내일을 기대하고 화장실을 쓰고 나올 때는 다음 사람을 위하여 화장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사소한 노력을 한다. 절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마스다 미리의 글과 만화에서 얻어간다. 


  별 거 아니다. 새벽 세 시까지 남아서 일해본 적도 있다. 매일 출근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나가 책상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 일하는 나를 보여주느라 바빴다.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일 자체를 하면 되는 거였는데.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을 원하는 도서관으로 가져다주는 책두레 서비스를 알아서 신간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주문할 수 있어서 기쁘다. 오늘 나에게 일본에 사는 언니 마스다 미리 님이 이렇게 말해주어서. 걱정 마,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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