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독보적 유튜버 박막례와 천재 PD 손녀 김유라의 말도 안 되게 뒤집힌 신나는 인생!
박막례.김유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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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방송을 보면서 아침부터 낄낄대고 웃을 줄이야. 시장 봐온 장바구니 하울 영상을 정신을 잃고 볼 줄이야.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루 보틀 커피 마시는 걸 보면서 감탄할 줄이야. 인생, 모른다. 아니 알 거 없다. 굳이 꿈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할머니가 치매 위험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손녀 김유라는 결심한다. 할머니와 여행을 가겠다는. 회사에 말했는데 휴가를 주지 않아서 퇴사를 해버린다. 일흔의 나이에 난생처음 외국 여행을 박막례 씨는 떠난다.

구독자 80만 명이 넘는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이야기는 책으로 나왔다. 제목도 비장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할머니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다룬다. 막내로 태어나서 막례라는 이름이 붙은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어찌어찌 글은 읽을 줄 알게 되고 한복 학원에 다니면서 동네 어른들 밥을 해주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음식 솜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막례 씨는 파출부와 장사를 하며 애들 셋을 키운다. 친구 애순 때문에 알게 된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일을 평생 후회한다.

숫기가 없는 그녀는 장사에 재능이 없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장사꾼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어려운 시기를 겪다가 자매 식당을 열어 인생의 중반기를 맞이한다. 솜씨가 좋아 식당은 장사가 잘 된다. 자식에게는 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나고 짠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성격이 활달해 계모임에도 나가고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드라마 덕후이기도 하다. 정해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황홀해 하는 손녀에게 팩트 폭행을 날리기도 한다.

손녀 김유라는 할머니와 함께 한 호주 여행에서 찍은 동영상을 업로드한다. 처음에는 가족끼리 보려고 했는데 반응이 좋기도 하고 두고두고 보시라고(유튜브는 로그인 안 해도 영상을 볼 수 있으니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 올라온 영상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편집과 자막 넣는 센스가 대단하다. 할머니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고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를 잡아낸다. 계모임과 한국 드라마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동영상도 재미있다. 편들아, 왔니라고 시작하는 영상들을 보다 보면 출근 시간을 놓칠 수도 있다.

솔직해서 팡팡 터지는 화법으로 일상의 재미를 더해주는 박막례 씨의 오늘을 응원한다. 화장이 잘 되고 안 되고는 너의 문제야, 문제. 하하하. 맞아, 맞아. 나의 문제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못생긴 내 모습을 보며 울적해 하지만 그건 누구의 문제도 아닌 내 문제인 것이다. 옷이 신발이 안경이 아닌 나의 문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인생 후반기를 신명 나게 살고 있는 한 사람의 희망이 담긴 책이다.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고 버렸다면 다시 주워 담으면 된다는 초긍정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크리에이터 박막례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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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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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권여선, 『레몬』 中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그 해를 기억한다. 거리에는 붉은 악마가 쏟아지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포옹을 하던 이상한 시간을. 누군가에는 신나고 즐거웠고 어떤 이에게는 슬프고 참혹했을 그때를. 애들은 학교에서 틀어주는 축구 경기를 봤고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골을 넣거나 말거나. 16강에 올라가거나 말거나. 응원하는 무리에 끼지 못하니 관심 없는 척했다. 뭐가 그리들 재미있을까. 경기에 이기면 편의점으로 취객이 몰려와 바쁘고 정신없었다. 월드컵, 얼른 끝나 버려라.

권여선의 소설 『레몬』은 2002년의 시간을 다룬다. 무해한 아름다움의 소유자 김해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친다. 고3이었던 김해언은 6월 30일 월드컵 폐막식이 열린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학교 인근 공원 화단에서 발견되었다. 둔기로 머리를 가격 당해 살해된 채로 말이다. 김해언을 마지막으로 본 자들의 심문이 이어지고 끝내 사건의 범인을 밝히지 못했다. 동생 김다언은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해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김해언의 주변 인물인 김다언, 윤태림, 상희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그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전부 알려주는 걸 마다한다.

전부 마다한다는 건 일정 부분 알려준다는 뜻도 된다. 추측하고 예상해야 하는 사건의 진실은 현재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동생 김다언은 언니를 죽인 사람을 알고 있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를 가한다. 한 사람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남은 자들은 어떤 얼굴과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과연 애도라는 형태를 취할 수 있을까. 『레몬』은 애도에 대한 소설이다. 죽지 않고 살아가는 건 삶의 가혹함을 견뎌야 한다는 뜻도 된다. 김해언이 죽고 그녀를 기억하는 자들의 삶은 애도가 가능할까.

죽음과 삶의 사유를 아름답게 풀어 놓는 권여선의 문장을 오래 읽어 간다. 약삭빠른 인간은 죄를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았다. 현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이 죽음으로 향하지 못할 때 삶은 삶일 수 없다. 『레몬』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남은 이들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게 한다. 아프지 않은 척할 뿐이다. 그가 남기고 간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괜찮은 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쏟아지는 죽음의 사연을 보면서 오늘이 무사히 가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다.

『레몬』은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도하지 못한 많은 죽음의 이야기는 아프고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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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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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미스터리는 없었다. 이것은 미스터리인가 코믹인가. 나름 일본 미스터리를 읽어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새로운 발견이다. 아니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구라치 준을.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지(이름하여 엄근지) 않은 다섯 편의 추리 소설이 찾아왔다. 제목도 이상한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심각한 이야기인데도 우스운 분위기를 끝까지 가져간다. 도박에 재산을 탕진한 형이 친동생을 죽이겠다고 계획하는 「ABC 살인」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의 향연은 낯설지만 친숙한 이야기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국내에 소개된 구라치 준의 소설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을 포함하여 세 권이다. 진심으로 이 작가의 첫 작품부터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인사 업무와 사내 근무를 관장하는 「사내 편애」의 경우 마지막의 소소한 반전까지 챙기기를 바란다. 살인 현장에 시체의 입에 파와 물려 있으며 그 곁에는 케이크가 놓인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은 범인의 심리를 독자가 상상하게 만든다.

「밤은 보는 고양이」는 사회파 추리 소설의 형식을 아주 살짝 띄고 있다. 밤마다 벽을 투사하고 있는 듯한 고양이의 행동에서 '나'는 기묘함을 느낀다. 고양이의 관점에서 파악한 이야기의 형태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있다. 드디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문제작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에서 펼쳐진 살인 현장은 대체로 말이 안 되는 모습인 것이다. 이상한 실험실에 차출된 병사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전쟁의 막바지 시기 이유도 알지 못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는 병사의 죽음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내야 할 것인가. 범행 도구? 범행의 동기?

가장 긴 분량의 이야기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은 신소재 연구 개발의 결과인 데이터를 얻으러 간 하마오카의 이상한 하루를 그린다. 경비가 철저한 그곳에서 멜론 캐릭터 인형탈을 쓴 선배 네코마루를 만난다. 구라치 준의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주인공인 네코마루는 웃기지만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인물이다. 부디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물을 담은 양동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연구소 실장이 겪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네코마루의 전적이 궁금하다.

책을 읽다 보면 발견의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새로운 작가의 발견. 책태기에 빠진 어렵고 심각한 것은 싫다,라는 추리 소설 마니아라면 손에서 놓지 않을 이야기가 담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을 추천한다. 반드시 위 조건에 충족해야 한다. 책태기에 빠져 있어야 하고 어렵고 심각한 것은 싫다며 징징대야 하고 추리 소설 좀 읽어본 자야 한다. 술술 읽히면서도 사건의 긴장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구라치 준의 발견. 쉽게 쓰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매력적인 문체의 미스터리 세계로 빠져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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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백수린.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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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봄의 소설을 담은 『소설 보다 봄 2019』를 읽으며 든 의문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두꺼운 커튼을 치고 보니 어제와는 다른 맑은 하늘이었다. 기대와는 다른 하루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 세계가 내는 소리에 귀를 열어둘 수 있다는 것. 분홍색 표지를 열어 마주한 소설에서 나는 삶은 번번이 나의 예상을 무참히 깨고 만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래 읽어서 이름이 반가운 작가의 소설도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소설도 봄의 환대처럼 느껴졌다. 제철에 먹는 음식이 있듯이 제철에 읽는 소설도 우리에게 있다면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추가되지 않을까. 『소설 보다』 시리즈는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을 담아 우리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봄. 작은 소리도 6월의 배경에서는 증폭되어 들리고 소설의 문장은 마음으로 더 깊게 침투해 온다. 『소설 보다 봄 2019』의 소설이 그러했다.

김수온의 「한 폭의 빛」에서 나는 잃어버린 도시의 꿈을 추억하는 것이다. 꿈을 상실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드는 숲과 아직 꿈을 가진 여자가 서성이는 집. 두 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망상과 기억의 춤을 읽고 나니 새벽이었다. 소설 속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을 꼭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언젠가 한 번은 그곳에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근사한 찻잔에 담긴 차를 마신 것 같아서. 내일의 날씨를 예상할 수 없었다. 그녀의 기억이 환시가 되어 나타날 때 빛은 사라지기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쪽을 택한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두 번 읽었다. 계간지에 실려 있어서 한 번. 『소설 보다 봄 2019』를 읽으며 한 번. 수를 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어떤 소설을 두 번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주기도 한다. 그건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다. 한 번 읽은 소설을 다시 읽을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같은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아이 둘을 낳고 전업주부가 된 여성 화자의 망설임과 무너진 기대감을 백수린은 탁월하게 그려낸다. 일상은 그렇듯 섬세한 지점에서 충돌하고 깨지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봉합 된다.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는 국경을 넘어 이룩한 새로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혈육으로 맺어진 고리타분한 가족주의가 아닌 국경, 인종, 성별, 나이를 초월해서 형성한 가족은 기존의 관념을 파괴한다. 우리 옆에 놓인 한자는 가축의 집인 축사를 의미하는데 이는 소설 속 부모인 재현과 아내의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생각의 형태이다. 유학 간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의 대학을 간다고 해서 부부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 아들이 사는 곳에서 이룩한 가정의 형태에 낯섦과 기이함을 느낀다.

세 편의 소설을 읽으며 나를 나이게 하는 것에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름의 초입에 읽는 봄이 마련해온 소설에서 기억, 절망, 꿈의 좌절, 다시 일어서기, 떠나보냄을 확인한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의 주인공이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이라며 자신의 위치를 환기하듯 내게 있어 삶은 소설을 읽는 시간으로 머물러 주었으면 하고 여기는 것이다. 똑똑 봄의 소설이 찾아온다. 우리는 우리이기에 『소설 보다 봄 2019』로 찾아온 제철 소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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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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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혁명 중이다. 바다 건너 홍콩. 내게 그곳은 어렸을 때 좋아한 코미디 영화의 시리즈 제목에 등장했고(영구와 홍콩 할매 귀신, 좀 무서웠다) 쇼핑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쇼핑의 천국인데 학생과 시민한테 그렇게 무자비하게 굴어도 되나) 이었다. 장담할 순 없지만 홍콩에 갈 일은 없을 듯한데 요즘의 나는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주 목이 멘다. 혁명 때문이다. 2014년에 우리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여기에서는 배가 가라앉았고 그곳에서는 우산을 들어 혁명을 시작했, 지만 실패했다. 우리 역시 똑같은 실패의 기억을 2014년에 가지고 있었다.

2016년 겨울,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구질구질 해지니 국가적인 사건만 말하겠다. 남을 해치기는커녕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겨우 밝히는 미약한 세기의 불빛을 가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혁명이었다. 2014년의 실패는 2016년의 희망을 불러왔다. 지금 홍콩에서는 송환법으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노래가 있었다. 우리의 상처와 고난, 피 흘림, 눈물, 한숨, 거대한 슬픔을 이기기 위한 노래가. 문학박사 출신의 사회운동가 검검은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1절은 광둥어로 2절은 한국어로 불렀다. 아시아에서도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나라들 그러니까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홍콩 등 12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는 노래는 한국의 노래였다. 누구는 부르지 말자고 했던 노래인데 타국에서는 번역까지 해서 시위 현장에서 부르고 있었다. 『디디의 우산』에서 나오는 혁명 때문이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일찍 죽어버린 dd와 그를 잊지 못하는 d 때문에 마음이 마구 헝클어졌다. 2014년에 시작한 홍콩의 우산 혁명이 떠오르고(『디디의 우산』이라는 제목 때문에, 경찰이 쏘는 최루액을 피하고 어떤 이는 경찰에게 씌워주기까지 하는 우산 때문에) 우리가 처음으로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었던 촛불 혁명이 생각나는 것이다. 『디디의 우산』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두 편의 연작소설을 담고 있다. 어떤 소설은 쓰고 나면 끝이라는 말보다는 시작을 붙이고 싶게 만드는가 보다. 황정은은 자신이 썼던 소설을 부셔서 다른 한편의 소설을 만들어 냈다.

혁명이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황정은의 문장은 난해하지 않다. 난해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끝까지 독자를 납득 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문장에 녹아 있다. 소설가 자신이 문장을 쓰면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다는 소설을 쓰고 싶은 화자의 이야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황정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어떤 때는 마음이 좋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시간을 겪는다. 어떻게 사람들은 견딜까를 궁금해하는 것도 지겨워 소설을 읽는다.

책을 숨겨 두었다. 책이 쌓여 있는 꼴을 이제는 보지 못해서. 문을 열고 책을 꺼내든다. 표지를 보고 제목을 읽고 첫 장을 넘긴다. 작가의 이력도 한 번 훑어본다. 빨간색 표지에 우산 하나가 접혀 있고 한글로 쓰인 황정은과 그 밑에 한자로 덧붙인 이름 밖에는 없는 단순한 약력. 『디디의 우산』을 읽으며 가라앉은 마음을 더 가라앉혔다. 내게는 이제 기쁨도 환희도 환호도 없다는 듯이. 음악 한 곡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d. 매일 죽음을 이기고 돌아오는 서수경과 나. 두 편의 이야기를 나눠 읽으며 나를 스치고 떠나고 다가올 감정을 생각한다. 어느 문장을 읽으면서는 계속 눈을 고정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황정은의 소설.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죽어도 나는 아직 소리로 꽉 찬 온기로 가득한 세계에 살아남았으니까. 황정은은 죽음과 혁명과 고통의 기억을 늘어놓고 있다. 혁명은 실패에서 온다,는 가식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법안 보류가 아닌 법안 폐기를 바라고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국민이 주인인데. 소수의 나라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거쳐 왔으니까. 분열과 무시와 냉대, 부패, 비리, 검은 세력에 얼룩진 시간을 살아왔고 어쩌면 혁명의 성공이라는 기쁨에 취해 그것들이 사라졌다고 믿으며 부동산과 갭투자와 시세 차익과 아파트 피를 붙여 파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 그들의 실패를 미화하고 싶지 않다.

『디디의 우산』의 빨간색 표지를 넘기면 검은 사인펜으로 적인 황정은의 사인이 있다. 인쇄를 한 건지 직접 한 권 한 권 사인을 한 건지 궁금해 소설 보다 더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건강하시기를. 정은. 2018. 12' 인쇄인지 직접 쓴 건지 모를 한 줄의 문장을 읽다가 어느새 출근이라는 혁명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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