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백수린.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봄의 소설을 담은 『소설 보다 봄 2019』를 읽으며 든 의문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두꺼운 커튼을 치고 보니 어제와는 다른 맑은 하늘이었다. 기대와는 다른 하루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 세계가 내는 소리에 귀를 열어둘 수 있다는 것. 분홍색 표지를 열어 마주한 소설에서 나는 삶은 번번이 나의 예상을 무참히 깨고 만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래 읽어서 이름이 반가운 작가의 소설도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소설도 봄의 환대처럼 느껴졌다. 제철에 먹는 음식이 있듯이 제철에 읽는 소설도 우리에게 있다면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추가되지 않을까. 『소설 보다』 시리즈는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을 담아 우리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봄. 작은 소리도 6월의 배경에서는 증폭되어 들리고 소설의 문장은 마음으로 더 깊게 침투해 온다. 『소설 보다 봄 2019』의 소설이 그러했다.

김수온의 「한 폭의 빛」에서 나는 잃어버린 도시의 꿈을 추억하는 것이다. 꿈을 상실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드는 숲과 아직 꿈을 가진 여자가 서성이는 집. 두 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망상과 기억의 춤을 읽고 나니 새벽이었다. 소설 속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을 꼭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언젠가 한 번은 그곳에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근사한 찻잔에 담긴 차를 마신 것 같아서. 내일의 날씨를 예상할 수 없었다. 그녀의 기억이 환시가 되어 나타날 때 빛은 사라지기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쪽을 택한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두 번 읽었다. 계간지에 실려 있어서 한 번. 『소설 보다 봄 2019』를 읽으며 한 번. 수를 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어떤 소설을 두 번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주기도 한다. 그건 시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다. 한 번 읽은 소설을 다시 읽을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같은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아이 둘을 낳고 전업주부가 된 여성 화자의 망설임과 무너진 기대감을 백수린은 탁월하게 그려낸다. 일상은 그렇듯 섬세한 지점에서 충돌하고 깨지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봉합 된다.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는 국경을 넘어 이룩한 새로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혈육으로 맺어진 고리타분한 가족주의가 아닌 국경, 인종, 성별, 나이를 초월해서 형성한 가족은 기존의 관념을 파괴한다. 우리 옆에 놓인 한자는 가축의 집인 축사를 의미하는데 이는 소설 속 부모인 재현과 아내의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생각의 형태이다. 유학 간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의 대학을 간다고 해서 부부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 아들이 사는 곳에서 이룩한 가정의 형태에 낯섦과 기이함을 느낀다.

세 편의 소설을 읽으며 나를 나이게 하는 것에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름의 초입에 읽는 봄이 마련해온 소설에서 기억, 절망, 꿈의 좌절, 다시 일어서기, 떠나보냄을 확인한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의 주인공이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이라며 자신의 위치를 환기하듯 내게 있어 삶은 소설을 읽는 시간으로 머물러 주었으면 하고 여기는 것이다. 똑똑 봄의 소설이 찾아온다. 우리는 우리이기에 『소설 보다 봄 2019』로 찾아온 제철 소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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