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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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혁명 중이다. 바다 건너 홍콩. 내게 그곳은 어렸을 때 좋아한 코미디 영화의 시리즈 제목에 등장했고(영구와 홍콩 할매 귀신, 좀 무서웠다) 쇼핑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쇼핑의 천국인데 학생과 시민한테 그렇게 무자비하게 굴어도 되나) 이었다. 장담할 순 없지만 홍콩에 갈 일은 없을 듯한데 요즘의 나는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주 목이 멘다. 혁명 때문이다. 2014년에 우리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여기에서는 배가 가라앉았고 그곳에서는 우산을 들어 혁명을 시작했, 지만 실패했다. 우리 역시 똑같은 실패의 기억을 2014년에 가지고 있었다.

2016년 겨울, 많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구질구질 해지니 국가적인 사건만 말하겠다. 남을 해치기는커녕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겨우 밝히는 미약한 세기의 불빛을 가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혁명이었다. 2014년의 실패는 2016년의 희망을 불러왔다. 지금 홍콩에서는 송환법으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노래가 있었다. 우리의 상처와 고난, 피 흘림, 눈물, 한숨, 거대한 슬픔을 이기기 위한 노래가. 문학박사 출신의 사회운동가 검검은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1절은 광둥어로 2절은 한국어로 불렀다. 아시아에서도 독재와 부패로 얼룩진 나라들 그러니까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홍콩 등 12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는 노래는 한국의 노래였다. 누구는 부르지 말자고 했던 노래인데 타국에서는 번역까지 해서 시위 현장에서 부르고 있었다. 『디디의 우산』에서 나오는 혁명 때문이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일찍 죽어버린 dd와 그를 잊지 못하는 d 때문에 마음이 마구 헝클어졌다. 2014년에 시작한 홍콩의 우산 혁명이 떠오르고(『디디의 우산』이라는 제목 때문에, 경찰이 쏘는 최루액을 피하고 어떤 이는 경찰에게 씌워주기까지 하는 우산 때문에) 우리가 처음으로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었던 촛불 혁명이 생각나는 것이다. 『디디의 우산』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두 편의 연작소설을 담고 있다. 어떤 소설은 쓰고 나면 끝이라는 말보다는 시작을 붙이고 싶게 만드는가 보다. 황정은은 자신이 썼던 소설을 부셔서 다른 한편의 소설을 만들어 냈다.

혁명이라는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황정은의 문장은 난해하지 않다. 난해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끝까지 독자를 납득 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문장에 녹아 있다. 소설가 자신이 문장을 쓰면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다는 소설을 쓰고 싶은 화자의 이야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황정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어떤 때는 마음이 좋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시간을 겪는다. 어떻게 사람들은 견딜까를 궁금해하는 것도 지겨워 소설을 읽는다.

책을 숨겨 두었다. 책이 쌓여 있는 꼴을 이제는 보지 못해서. 문을 열고 책을 꺼내든다. 표지를 보고 제목을 읽고 첫 장을 넘긴다. 작가의 이력도 한 번 훑어본다. 빨간색 표지에 우산 하나가 접혀 있고 한글로 쓰인 황정은과 그 밑에 한자로 덧붙인 이름 밖에는 없는 단순한 약력. 『디디의 우산』을 읽으며 가라앉은 마음을 더 가라앉혔다. 내게는 이제 기쁨도 환희도 환호도 없다는 듯이. 음악 한 곡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d. 매일 죽음을 이기고 돌아오는 서수경과 나. 두 편의 이야기를 나눠 읽으며 나를 스치고 떠나고 다가올 감정을 생각한다. 어느 문장을 읽으면서는 계속 눈을 고정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황정은의 소설.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죽어도 나는 아직 소리로 꽉 찬 온기로 가득한 세계에 살아남았으니까. 황정은은 죽음과 혁명과 고통의 기억을 늘어놓고 있다. 혁명은 실패에서 온다,는 가식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법안 보류가 아닌 법안 폐기를 바라고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국민이 주인인데. 소수의 나라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거쳐 왔으니까. 분열과 무시와 냉대, 부패, 비리, 검은 세력에 얼룩진 시간을 살아왔고 어쩌면 혁명의 성공이라는 기쁨에 취해 그것들이 사라졌다고 믿으며 부동산과 갭투자와 시세 차익과 아파트 피를 붙여 파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 그들의 실패를 미화하고 싶지 않다.

『디디의 우산』의 빨간색 표지를 넘기면 검은 사인펜으로 적인 황정은의 사인이 있다. 인쇄를 한 건지 직접 한 권 한 권 사인을 한 건지 궁금해 소설 보다 더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건강하시기를. 정은. 2018. 12' 인쇄인지 직접 쓴 건지 모를 한 줄의 문장을 읽다가 어느새 출근이라는 혁명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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