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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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권여선, 『레몬』 中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그 해를 기억한다. 거리에는 붉은 악마가 쏟아지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포옹을 하던 이상한 시간을. 누군가에는 신나고 즐거웠고 어떤 이에게는 슬프고 참혹했을 그때를. 애들은 학교에서 틀어주는 축구 경기를 봤고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골을 넣거나 말거나. 16강에 올라가거나 말거나. 응원하는 무리에 끼지 못하니 관심 없는 척했다. 뭐가 그리들 재미있을까. 경기에 이기면 편의점으로 취객이 몰려와 바쁘고 정신없었다. 월드컵, 얼른 끝나 버려라.

권여선의 소설 『레몬』은 2002년의 시간을 다룬다. 무해한 아름다움의 소유자 김해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친다. 고3이었던 김해언은 6월 30일 월드컵 폐막식이 열린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학교 인근 공원 화단에서 발견되었다. 둔기로 머리를 가격 당해 살해된 채로 말이다. 김해언을 마지막으로 본 자들의 심문이 이어지고 끝내 사건의 범인을 밝히지 못했다. 동생 김다언은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해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김해언의 주변 인물인 김다언, 윤태림, 상희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그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전부 알려주는 걸 마다한다.

전부 마다한다는 건 일정 부분 알려준다는 뜻도 된다. 추측하고 예상해야 하는 사건의 진실은 현재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동생 김다언은 언니를 죽인 사람을 알고 있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를 가한다. 한 사람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남은 자들은 어떤 얼굴과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과연 애도라는 형태를 취할 수 있을까. 『레몬』은 애도에 대한 소설이다. 죽지 않고 살아가는 건 삶의 가혹함을 견뎌야 한다는 뜻도 된다. 김해언이 죽고 그녀를 기억하는 자들의 삶은 애도가 가능할까.

죽음과 삶의 사유를 아름답게 풀어 놓는 권여선의 문장을 오래 읽어 간다. 약삭빠른 인간은 죄를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았다. 현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이 죽음으로 향하지 못할 때 삶은 삶일 수 없다. 『레몬』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남은 이들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게 한다. 아프지 않은 척할 뿐이다. 그가 남기고 간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괜찮은 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쏟아지는 죽음의 사연을 보면서 오늘이 무사히 가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다.

『레몬』은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도하지 못한 많은 죽음의 이야기는 아프고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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