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사계 가을.겨울 밀리언셀러 클럽 2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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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사계 시리즈 중 하나인 가을의 이야기 「스탠 바이 미」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원래 리뷰 쓸 때 책 속의 문장을 많이 가져와서 쓰는 편이 아닌데 이번만은 예외다. (인생은 늘 예외와 의외의 일로 이루어지니까.) 스티븐 킹을 공포 소설 작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나라도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다양한 이야기를 쓰는 만능 재주꾼이라는 걸 알려야겠다. 옮겨 온 문장의 기준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취향이다. (맘에 들거나 말거나.)

인생은 게임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진행자가 시키는 대로 '행운의 수레바퀴'를 돌리면 수레바퀴가 예쁘게 회전한다. 그러나 진행자가 페달을 밝으면 곧 빵점이 나오고 누구나 패배자가 된다. 인생은 무료입장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강우기(降雨機)가 켜지면서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번 테시오처럼 멍청한 녀석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장난이다.

그리고 그 어둠(또는 빛의 부재) 속에서 레이 브라워의 시체를 떠올리며 내가 느낀 것은 그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날 것 같다는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의(그것의) 평화를 어지럽히기 전에 쫓아버리려고 녹색 귀신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지금 지구상에서 우리가 있는 곳을 뒤덮고 있는 이 어둠 속에서 그는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무력한 상태일까 하는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연민이었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말하기도 제일 어렵다. 말로 표현하면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건일지라도 남들까지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는 쉽지 않다.

소설가가 작품을 쓰는 유일한 이유는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의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소설에는 모든 동사가 '……했다'로 끝나는 거죠. 수백만 권이 팔리는 인기 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목적에 쓸모가 있는 예술 형식은 종교와 소설, 그렇게 두 가지뿐이죠.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도 나는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는 사랑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랑의 상처는 어떤 말로도, 어떤 말들의 조합으로도 아물게 할 수 없다. 우습게도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상처가 아물면 말도 함께 죽어 버린다. 내 말은 믿어도 된다. 나는 한평생 말로 먹고산 사람이므로 그것이 사실임을 잘 안다.
(스티븐 킹, 「스탠 바이 미」中에서)

어떤가.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면 당장 「스탠 바이 미」를 읽기를 권한다. 읽어나갈수록 서늘해지다가 뜨겁고 다시 뭉클해질 것이다. 「스탠 바이 미」는 여름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에 죽은 아이를 보러 가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하는 네 명의 소년의 모험담이다. 이틀의 시간을 겪고 나서 소년들은 차츰 변해간다. 영원할 것 같은 우정도 흐지부지 해지고 지금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인생이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걸어갈 뿐이다.

현명한 어른은 주변에 없고 소년들이 헤쳐나가야 할 환경은 척박하기만 했다. 가정 폭력과 소외에 시달리는 네 명의 아이들은 죽어 누워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간다. 작가가 되어 그때를 회상하는 '나'의 서술로 이루어진 「스탠 바이 미」의 부제는 '자각의 가을'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무언가를 하나씩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보호받지 못했으면서도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으로 나이를 먹어간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성장 소설 「스탠 바이 미」는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시작한다.

「의지의 겨울, 호흡법」은 기묘한 클럽에서 듣게 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회사 사장의 제의로 가게 된 비밀스러운 모임에서 '나'는 이상 야릇한 이야기를 듣는다.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던 노인의 술회는 크리스마스를 한층 묘하게 만든다. 혼자 아이를 낳겠다는 여인과 친밀해진 의사는 그녀가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그가 개발한 호흡법을 가르쳐 주면서 말이다. 여인은 의지가 빛나고 단호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한 크리스마스 전날 사고를 당한다. 머리가 잘린 시점에서도 끝까지 호흡법을 이어가며 아이를 낳는다.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의 삶이란 왜 이토록 비극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안타깝게 만든다. 우리는 뽑기 기계에서 꽝이라고 불리는 상품으로 태어난 것일까.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꽝이라고 불리어도 꿋꿋이 인생을 살아나가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나라는 존재는 확실히 꽝이 맞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끊임없이 읽는다.

아직 「스탠 바이 미」의 인물인 크리스와 「의지의 겨울, 호흡법」의 미스 스탠스필드처럼은 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언젠간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오싹함과 기괴함을 뺀 스티븐 킹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소설에서 나의 인생이 꽝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살아보고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리라 다짐한다. 스티븐 킹의 조언대로 그때까지 좋은 책 많이 읽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제일 중요한 일을 쉽게 말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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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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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해준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이 잊히질 않았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옥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걸 보는 한 남자의 쓸쓸한 미소. 영화는 내내 좋았다. 죄수들이 맥주 마시는 걸 보면서 웃던 남자는 벽을 뚫어서 탈옥에 성공했다. 속도감 있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했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따로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훗날 좋아하게 될 작가 스티븐 킹이 썼다는 걸 알고는 더 좋아져 버렸다.

영화의 원작 소설이 담긴 스티븐 킹의 사계 시리즈 중 봄과 여름의 이야기가 담긴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읽었다. 읽는 동안 시간은 느릿느릿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와 있었다. 여름에는 봄의 일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법이다. 앤디 듀프레인의 기막힌 일생을 관찰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며 봄을, 어렴풋이 따뜻하고 포근했던 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희망의 봄'이라는 부제가 붙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좋은 소설이다. 왜 좋은지를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될까 의구심이 든다.

아내와 정부를 죽였다는 혐의로 유죄를 살게 된 은행가 앤디의 기나긴 집념의 시간은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다가도 결국 희망은 있다는 희망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널린 게 시간인 감옥 안에서 우연히 벽을 긁다가 바스러지는 벽의 형태를 파악한 뒤 조금씩 천천히 은밀하게 벽을 뚫어 벽으로 사라지는 남자. 인생은 희망 아니면 포기를 모르는 집착이 우리를 끌고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두 번째 소설인 「우등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인물들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소설이다. '타락의 여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속의 인물인 토드, 듀샌더는 죄책감 따위는 갖지 않는다. 과거에 나치에 복무했던 듀샌더의 신원을 알아낸 열세 살 소년 토드의 기행은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연민과 동정을 거둘 수밖에 없게 만든다. 소년과 듀샌더의 타락은 멈출 수 있을까. 두 편의 소설에는 킹의 전매특허인 호러, 스릴러, 서스펜스, 기이함이 없다. 대신 소설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환하게 하거나 어둡게 하는 감정의 굴곡을 느끼게 해준다.

앤디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토드와 듀샌더의 행동에서 절망을.

혹은 완전히 타락할 수 없게 최소한의 희망을 두 개의 이야기 안에 적절하게 버무려 놓았다. 어둠과 가까이하는 자는 그것과 닮게 된다는 교훈도 들려준다. 봄에는 삶의 희망을 노래하다가 여름에는 점점 변해가는 타락해가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인간의 시간을 소설로써 형상해 놓았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곤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버텨내는 것인데 스티븐 킹은 지금보다 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 준다. 놀라운 이야기들을 잔뜩 안겨주며.

스티븐 킹이 늘 말하는 것처럼 소설은 이야기로 가득해야 하고 그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한 우리는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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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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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네 편의 이야기가 있다. 당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가. 호러킹이라고 불리는 스티븐 킹의 중편을 모은 『별도 없는 한밤에』는 어둠과 기괴함과 불안함을 재료로 한다.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직관력으로 승부하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당신의 뒤를 조심해야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존재의 방문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시간이 무한정 느리게 간다고 느껴질 때. 사는 것이 그저 그렇다는 비관에 젖어 있을 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기를 권한다.

시간은 촉박하게 흘러가고 킹의 소설을 읽기 위해 내일 아침 눈을 떠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내를 죽였다는 다짜고짜 느닷없는 고백부터 들이대는 「1922」는 『별도 없는 한밤에』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지루하지 않다. 어서 다음 이야기를 들려줘라는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런 소설을 페이지 터너라고 한다.) 장인의 땅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아내와 의견이 맞지 않아 남자는 아들과 계획을 짠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를 원하는 남편은 아내의 행동이 못마땅하다. 아내는 땅을 팔고 도시로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아들의 심약한 면을 건드려 부인을 죽이고 그날부터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빅 드라이버」는 추리 소설 작가의 황당한 귀갓길을 그린다. 원래 길이 아닌 도서관 사서가 알려줘서 간 그 길에서 작가는 무지막지한 일을 겪는다. 이후 그가 알아내고 추리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 인간의 본성은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상상을 쓴 「공정한 거래」는 불행과 행운의 차이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가 흔히들 성공이라고 부르는 이면을 스티븐 킹은 민담처럼 풀어낸다. 다른 이에게 나의 불행을 넘긴다는 발상이 무섭고도 소름 끼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한국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공식을 따른다. 제목에서 주는 반어는 소설의 주제를 강조한다. 눈치챘겠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이 아닌 불행한 결혼 생활을 신랄하게 담아낸다. 어느 날 남편이 가진 비밀을 발견했다면? 그 비밀의 끝을 자신이 매듭지어야 한다면? 각각의 이야기는 네 편의 소설을 아우르는 제목인 『별도 없는 한밤에』의 암시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겁이 많은 편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끔찍하고 무서워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였다.

닫는 글에서 킹이 밝히다시피 그는 이야기의 소재를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그걸 독하게 만들어 낸다. 소설이니 그러한 발상과 전개가 가능하지라고 납득하면 안 된다. 현실은 더한 공포와 기괴함으로 가득하다. 독자를 공포와 불안의 세계로 단박에 끌어들이는 재주는 단연 스티븐 킹이 최고이다. 『별도 없는 한밤에』에 실린 소설이 그걸 입증하고 있다.

악의 끝이 세계의 종말이 어떤 형태인지 알고 싶지 않은가. 『별도 없는 한밤에』 속 지독한 소설의 무대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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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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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식의 소설이 좋다. 바로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주인공의 과거 회상으로 시작하는. 쉽게 말하자면 성장 소설.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향수와 그리움을 애잔함을 불러온다. 죽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소설. 스티븐 킹의 『조이랜드』는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 추리가 가미된 소설이 되겠다. 둘 다 젊은 시절과 그때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이랜드』 쪽이 흥미와 긴장이 더 섞여 있다. 둘 다 좋은 소설이다.

스물한 살의 청년 데빈 존스는 여름 방학 동안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가 일하는 식당에 누군가 두고 간 잡지 뒷면의 구인란에서 그곳을 발견한다. 바로 '조이랜드'였다. '천국과 가까운 일터'라고 적혀 있어 순간적으로 전화를 걸었고 일주일 뒤에 입사 지원서를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고 합격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로지 골드라는 점을 봐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직관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단번에 데빈의 상태를 짚어낸다. 그즈음 데빈은 웬디라는 첫사랑에 실패 중이었다.

그녀는 데빈에 앞날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뻔한 소리 끝에 두 명의 어린애를 만날 거라고 예언한다. 여자애는 빨간 모자를 쓰고 인형을 가지고 있고 남자애는 개를 데리고 다니고 있다고. 데빈은 반은 믿고 반은 흘려듣는다. 같이 일하게 된 레인이라는 남자가 알려주는 대로 해변 근처에 있는 곳에 방을 잡는다. 여관의 주인 숍로 부인은 데빈이 일하게 될 조이랜드에 있는 공포의 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들려준다. 데이트 중인 두 남녀였는데 둘이 들어갔다가 한 명만 나오게 된 사건.

남자는 여자의 목을 그어 던져 버리고 사건 현장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할리우드 걸들이 찍은 사진에는 그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찍혀 있지 않았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공포의 집에는 죽은 여자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데빈은 당장 공포의 집에서 일하지는 않았으므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에게는 공포의 집에서 보인다는 여자의 유령 보다 해피 하운드라고 조이랜드의 상징 개 분장을 위해 털옷을 입는 것이 더한 공포였다. 털옷을 입고 춤을 추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그해 여름 최고의 공포인 것이다.

그러다 데빈은 같이 일하는 동료인 에린, 톰과 공포의 집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톰의 눈에 여자의 유령이 보였고 데빈은 휴학을 하고 조이랜드에 남아 일을 할 결심을 한다. 그해 여름과 가을의 사건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유령, 살인 사건, 예언과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즐거움이 최고라는 조이랜드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의 연결고리를 우리의 주인공 데빈은 찾을 수 있을까. 그가 만날 것이라는 아이들은 그의 인생을 어느 선로로 옮겨 놓을까. 스티븐 킹은 추리와 호러를 살짝 가미한 성장 소설로서 『조이랜드』를 완성한다.

사건의 진범을 찾는 재미와 더불어 한 인간의 성장 이야기는 소설이란 왜 이 세계에 꼭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조이랜드 안에 감춰진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에 만난 사람들. 결코 잊을 수 없는 우정의 온기까지 데빈은 살아남아 지켜낸다. 스티븐 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게 우리를 놀라게 할 유령이나 귀신 (같은 맥락인가?) 이 아닌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믿음 말이다. 『조이랜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과 삶의 경계는 없으므로 어느 방향으로도 우리는 쉽게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같은 뻔한 결말이 아닌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언젠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세계에 필요한 단순한 진리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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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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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 손을 잡고 어판장으로 갔다. 팔고 남은 잡어를 가지고 오는 게 일이었다. 생선을 들고 선주 집으로 갔다.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같은 돈을 몇 번이나 세어서 줬다. 고기가 안 잡힌다는 둥 하나 마나한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어찌어찌 돈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돈을 받아 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집에 와서 성질을 낼게 분명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부엌 바닥에 앉아 생선을 손질하고 남은 건 주인집에게 주었다. 옷도 사서 입고 통닭집에 전화를 걸어 닭도 시켜 먹었다. 그 돈으로.

일이 없는 계절인 겨울에는 고대구리 배를 탔다(고대구리는 바다 밑바닥까지 훑어서 고기를 잡는 방식인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어린 물고기까지 싹 쓸어오는 조업 형태이므로). 한 번 풍랑을 맞아 배가 뒤집힌 적도 있었다. 지나가는 어선에 의해 구출되었고 인근 섬에서 몸을 추스르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런 일도 있었다. 한창훈의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의 서문은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가 바다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저 남해의 섬에 사는 소설가는 어찌 알았을꼬.

사실 나는 바다를 좋아한 적이 없다. 교실 창가에서 보이는 바다. 바람이 불어오면 짠내도 함께 밀려왔다. 칠판을 보는 것보다 창문 너머의 바다에 눈을 주고 있던 적이 더 많았다. 작은 배들이 통통통 지나가고 밤이면 약한 불빛이 번져 왔다. 실은 바다가 주는 돈으로 먹고살았는데. 그런 바다에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느 순간 그때를 잊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다는 일상의 배경일 뿐이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어나가며 이제 막 잡은 생선의 싱싱함보다 먹기 좋게 손질한 횟감보다 눈이 가는 건 흑백의 바다였다(전자책으로 읽어서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섬에서 태어나고 다시 섬으로 돌아간 소설가 한창훈이 쓴 21세기 신자산어보이다. 천주교 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은 그곳에서 수산생물 일지 『자산어보』를 쓴다. 200년 전의 기록은 21세기를 만나 다시 태어난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는 거문도, 백도, 여수 근처에서 잡히는 해산물 29종의 채취 방법, 조리법, 특성을 다룬다. 한 종이 더 있긴 한데 그건 해산물은 아니고. 한 번 읽어보시라. 신비한 구석이 많은 종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를 벗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을 담는다.

섬에서 섬으로 시집온 어느 여인의 이야기. 복국 끓이는 법을 배워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것마저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애환. 갓김치를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몰래 갓김치를 넣은 할머니. 어렸을 때부터 바다낚시를 한 소설가의 회상. 미식의 세계를 탐하기 보다 바다와 해산물과 바람이 주는 풍성한 이야깃거리에 아슴푸레했던 그곳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 손을 잡고 갈 때 느꼈던 긴장과 흥분. 돈을 주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엄마의 옆모습. 생선을 담은 봉지의 묵직함.

바닷가 근처에서 내륙으로 사는 곳을 옮겨오느라 바다 같은 건 생각해보지 않은지 오래였다. 누군가 올려놓은 여행지의 푸른 바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스노클링을 한다며 장비 일체를 사기도 하던데. 낚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라 그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횟집에 전화 주문이 밀려든다던데. 나와는 별 관계도 연결 고리도 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쩌랴.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기어이 기억 속 바다를 불러왔다.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그리운 추억을 데리고 왔다.

엄마가 해준 밥상 위에는 늘 생선이 올라왔다. 생선은 혼자서 해 먹기 어려운 반찬임을 알았던 것이다. 나 혼자 먹자고 생선을 사서 손질하고 기름과 전투를 벌일 일은 없는 것이다. 조기, 갈치, 병어, 임연수가 종종 올라왔다. 서대 찜도.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의 표현대로 숟가락으로 생선 살을 퍼서 먹었다. 행복했지만 행복한지 모를 시간의 일이다. 강원도에서 시집온 엄마는 여기 사람들이 고등어를 생선 취급도 안 하는 걸 놀라워했다. 그 귀한 걸 다 버리더라.

냉장고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미역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떤이가 자기 생일이라고 하나씩 돌리길래 받아왔다. 제품의 특징을 읽다가 우스운 문장을 발견했다. '조리 시 약 20배 불어날 수 있습니다.' 그걸 읽고도 양 조절을 못해서 솥으로 끓여야 할 정도의 양으로 불려놨다.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누가 보면 대식구가 사는 줄 알겠다. 큰일까지는 아니고 몇 날 며칠 먹으면 된다. 바다를 떠나왔지만 바다는 이렇듯 가까이에 있었다. 기억 속 바다의 내음을 맡으며 피를 맑게 해준다는 미역국으로 한 시절의 그리움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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